수서 신라전의 기록은 양국이 외교적 협상을 통하여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 이후 濊지역에서 발생하였던 隋 이전의 중국왕조, 신라, 고구려, 백제 등의 영토와 관련된 이해관계를 대대적으로 조율하면서 신라가 영유한 영토의 공인과 책봉 문제 등에 대하여 두 나라 사이에 빅딜[Big Deal]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신라는 隋皇帝와 㞌琴[잉금]이라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樂浪郡公’이라는 책봉명을 통하여 沃沮, 不耐, 獩의 땅의 실질적인 주인임을 공인받고, 그 대가로 ‘上開府’라는 책봉명을 통하여 종1품의 자격으로 ‘新羅王’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이루어진 隋와 신라의 외교적 합의는 그 후 김춘추가 唐을 방문하여 태종과 삼한일통과 관련된 외교관계를 수행할 때 하나의 지침서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김춘추는 동해안의 옥저 지역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대동강 유역의 낙랑지역과 대방지역을 얻어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김춘추는 신라 1,000년의 역사에서 ‘태종’이라는 묘호를 유일무이하게 가지고 있다.
수서 신라전에 대한 포괄적 이해 Ver 0.3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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