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시청자 질문

지난번 보내주신 단군 해모수와 그 아들 관계에 대해서는 저도 20여 년 전에 논문에 쓴 바 있습니다. 이번 내용도 예리하고 경청할 부분입니다. 다만 한자로 '임금'壬儉이라 쓴 곳이 이곳 뿐인데 예전에는 이사금/치질금 즉 '잇금'으로 알려진 데 대한 소견이 궁금합니다.

 

//// livemiri 답변

 

()居世, 居西干, 尼叱今, 그리고 居瑟邯에 보이는 居瑟 등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은 모두 삼국유사 왕력편에 보이는 [모양이 조금 다른 이체자 ’]의 획이 변형되는 과정에 새롭게 판독된 글자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1차로 변형된 尼叱今에서 2차로 齒叱今, 尼師今 등의 변형이 한 번 더 나타난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보이는 왕력편은 일연의 저작은 아닌 것 같고,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삼국의 왕력을 삼국유사에 합본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저는 박씨신라의 7, 석씨신라의 8, 그리고 김씨신라의 초대왕인 미추까지는 왕호를 孕琴으로 사용하였고, 17대 내물왕에 이르러 痳錦[임금]으로 왕호를 변경하였는데, 이 임금의 변형된 형태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麻立干으로 파악합니다.

 

痳錦[임금]은 삼국의 시기에 나타나는 금석문에 寐錦, 일본서기에 [모양이 조금 다른 이체자]등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한자를 매금으로 읽으면 의미가 통하지 않지만, ‘임금으로 읽으면 비로소 의미가 통하여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왕호인 임금이 됩니다. 신라인들은 寐錦을 임금으로 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고기나 삼국사기에 인용된 王儉, 王險등도 왕검이나 왕험 등으로 읽어서는 의미가 없고, 이것 또한 임금으로 읽어야 의미를 갖는다고 파악합니다. 왜냐하면 위만조선을 떠나 진국으로 도망간 유이민들이 徐羅伐을 건국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선주지인 王險[사기 조선열전]의 명칭에서 그들의 왕호를 만들어 쓴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지금 王儉의 형태로 한자가 남아 있지만, 우리말에 임금이라는 왕호가 유유히 繼承된 것으로 보아 의 변형으로 이해해야 본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王儉朝鮮은 임금조선이고, 삼국사기의 동천왕21년 기록에 王儉으로부터 변형된 王險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王險城으로 적더라도 읽을 때는 임금성으로 파악해야 본래의 의미에 합당하다고 파악합니다.

 

임금과 관련된 글은 제 블로그[https://livemiri.tistory.com/]의 이곳 저것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잇금이라는 표현은 尼叱今, 齒叱今, 尼師今 등에 보이는 , 등을 사이시옷 ㅅ으로 판단하여 , 의 받침으로 이해한 것인데, ‘잇금임금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尼叱今, 齒叱今, 尼師今孕琴의 획이 변형된 것을 판독하면서 새롭게 이해한 단어일 뿐입니다. '孕琴'과 획이 가장 비슷한 경우가 삼국유사에 '居瑟'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livemi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