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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vemiri  (2013-01-22 21:53:07, Hit : 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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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臣智激韓이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한 이유
臣智激韓이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한 이유




『三國志』 「東夷傳」 「한전」에는 臣智激韓이 忿하여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알리고 있다.

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 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部從事 吳林은 樂浪이 본래 韓國을 거느렸기 때문에 辰韓八國을 분할하여 이것을 樂浪에게 주었다. 吏譯이 전하면서 異同이 있어, 臣智激韓이 忿하여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하였다. 이 때,..]

‘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 以與樂浪’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三國志』 「東夷傳」 「한전」의 관련기록을 찾아 살펴보자. 앞서 필자는 部從事 吳林이 관련된 기록은 서기 247년에 일어난 사건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보면 아래와 같다.

a) 准既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魏略曰<생략>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魏略曰<생략> 其後絕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b) 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魏略曰<생략>[염사착 관련]

c) 桓靈之末,韓濊強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

d) 建安中(서기 196~220),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興兵伐韓濊,舊民稍出,是後倭韓遂屬帶方。

e) 景初中(서기 237~239),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其次與邑長。其俗好衣幘,下戶詣郡朝謁,皆假衣幘,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

f) 部從事吳林(서기 245~247) 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위 기록의 a)는 준왕에 관련된 기록이며 b)부터 韓과 중국 측 왕조와의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漢나라 때 韓이 낙랑군에 속했다고 하면서 『魏略』에 기록된 염사착 관련 사건을 주석으로, 그리고 c) 후한 환제(재위 146~167년), 영제(재위 168~189년) 말엽에 이르러 韓과 濊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군현이 이를 제어를 하지 못하여 民이 한국으로 많이 유입되었다고 하였다.

중국사를 보면 후한의 지배권력이 약해지자 公孫度은 요동지방을 근거지로 지방정권을 세웠는데, 이 공손씨 정권이 등장한 이후 중국 조정은 비록 잠정적이기는 하더라도 요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을 ‘絕域’, ‘海外之事’라고 하여 공손씨가 관할하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d)의 기록은 이 공손씨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屯有縣 이남의 荒地를 개척하여 帶方郡을 설치하고 韓과 濊를 군사적으로 정벌하면서 군현을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하여 새롭게 倭와 韓은 帶方군에 속하게 된다.

그 후 공손씨 정권은 위나라에게 복종하지 않고 燕王을 자칭하며 魏와 대립하다가 서기 238년 魏軍이 공손연 부자를 참하자 그 세력이 소멸하였다. e)의 기록은 이 공손씨 정권이 소멸된 후 魏명제가 낙랑, 대방을 새롭게 접수한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중국 조정은 대대로 동이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和爭 양면의 모습을 취하며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시초가 바로 한에 의한 四郡의 설치이다. 낙랑 진번 임둔 현토군의 설치로 동이지역의 濊, 貊, 韓지역에 대하여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인 전초지역으로써의 역할을 하면서 동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그 후 진번과 임둔이 폐지가 되고 현토가 고구려 서북으로 이치되면서 韓지역은 낙랑군의 소관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三國志』 「東夷傳」 「한전」에 보이는 ‘漢時屬樂浪郡’이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한사군 설치 이후 韓과의 교섭 창구는 낙랑군이었는데, 공손씨 정권이후 이러한 판도가 변화하였다. 즉 韓과의 교섭 창구였던 낙랑군의 역할이 대방군이 설치되면서 대방군으로 이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점은 후에 왜여왕 비비호의 등장과도 관련이 있다. 이것이 바로 『三國志』 「東夷傳」 「한전」에 보이는 ‘是後倭韓遂屬帶方’이라는 표현이다.

그 후 위명제 또한 공손씨 정권 이후 만들어진 낙랑 대방군을 통하여 韓지역과 계속하여 소통을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帶方太守劉昕과 樂浪太守鮮于嗣를 파견하여 韓지역의 신지들과 접촉을 하는데 이때 변한의 安邪와 拘邪의 신지가 적극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위명제는 安邪와 拘邪의 신지에게 작위를 내려주고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는다. 魏의 동방정책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이때가 바로 景初中이다.

그런데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部從事 吳林이 파견되면서 이러한 구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部從事 吳林은 대방군과 교섭을 하던 진한팔국을 낙랑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三國志』 「東夷傳」 「한전」에 ‘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이라고 언급된 부분이다. 대방과의 교섭을 통하여 진변한 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던 臣智激韓에게는 커다란 타격이었을 것이고 이에 빡친 臣智激韓이 帶方郡 崎離營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臣智激韓이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한 이유를 ‘통역자의 불일치한 의사전달’이니 ‘통역자의 오해로 말미암았다’느니 ‘중국조정의 내정간섭’이니 하는 것은 포상팔국전투와 그 이후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ver. 0. 9999. 0009





















잡담 :


태고적 천상에는 두 女神이 있었으니
한 女神은 좋은 자리를 잡아 어기여차 씨줄을 짜고,
다른 예쁜 女神은 아자아자 날줄을 짜면서
세월이라는 수레바퀴를 만들었다네.

수레바퀴는 永劫 동안 삼라만상과 인간세상을 위해 돌면서
시시때때로 喜怒哀樂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안겨주었지.

그 수레바퀴가 돌고돌고돌아 역사를 만들어 가니
그 것이 시작인지 끝자락인지
가는 세월 아쉬워 말고,
우리들 모두 늘 수레바퀴를 멋지게 돌려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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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며칠 시간이 있어서 좋았는데,...
바쁜게 좋은 건지, 한가한게 좋은 건지, 님들은 어떠세여??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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