循海岸水行,曆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依山島爲國邑。舊百餘國,漢時有朝見者,今使譯所通三十國。從郡至倭,循海岸水行,曆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始度一海,千餘里至對馬國。<중간생략>又南渡一海千餘里,名曰瀚海,至一大國,<중간생략>又渡一海,千餘里至末盧國,<중간생략>東南陸行五百里,到伊都國,<중간생략>東南至奴國百里,<중간생략>東行至不彌國百里,<중간생략>南至投馬國,水行二十日,<중간생략>南至邪馬壹國,女王之所都,水行十日,陸行一月。<이하생략> [(일부번역) 군에서부터 倭까지 海岸을 돌아 물길로 韓國을 지나, 조금 남쪽 조금 동쪽으로 가면 其北岸 狗邪韓國에 이른다.]
왜인전의 서두는 대방관리들이 邪馬壹國을 찾아가는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에서 대방관리들의 이동방법과 동선을 따로 발췌하면 아래와 갔다.
帶方출발 -(循海岸水行)- 狗邪韓國 -(度一海)- 對馬國 -(渡一海)- 一大國 -(渡一海)- 末盧國 -(陸行)- 伊都國 -(생략, 육행)- 奴國 -(생략, 육행)- 不彌國 -(水行)- 投馬國 -(水行, 陸行)- 邪馬壹國도착
대방군에서 狗邪韓國에 도착하기까지는 ‘循海岸水行’이라고 하였으니 배를 이용하여 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을 따라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대방관리들이 한반도의 일부지역에서 육로를 따라 이동하였다면 陸行라는 표현이 분명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점은 投馬國에서 왜여왕이 있는 邪馬壹國에 가는 여정에 水行과 陸行이 같이 등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循’은 ‘빙 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로 대방관리들이 해안선을 따라 빙글 돌듯이 한반도 해안가를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乍南乍東’이라는 표현까지 곁들여져 있어 이동방법에 대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대방관리들이 바다를 항해하는 방법을 위 기록에서 좀 더 찾아보면 度一海라는 표현도 보인다. 아마 이 둘의 차이는 연안항해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더 큰 대양항해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狗邪韓國에서 對馬國으로, 對馬國에서 一大國으로, 一大國에서 末盧國으로 가는 과정에서 渡一海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狗邪韓國은 지금의 김해지역이고 對馬國, 一大國은 지금의 일본열도의 부속섬인 대마도와 壹岐島이며, 末盧國은 九州북단이니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는 항해와는 달리 한반도에서 九州북단으로의 이동은 위험한 큰 바다를 징금다리를 건너듯이 넘어간다는 의미로 ‘度’라는 표현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지금도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것을 왕왕 ‘度美’라고 표현한다.
위 기록에 보이는 循海岸水行은 3세기 대방관리들의 魏倭간의 교통로로 이용한 방법이다. 참고로 후에 곤지가 일본으로 갈 때도, 왜에서 백제 멸망에 즈음하여 원군을 파견할 때도 다 같이 한반도의 서남해안을 ‘循海岸水行’하면서 이동하고 군사를 실어 날랐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나 근세 조선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게 해상교통로로 이용하였다는 것을 지금도 신안이나 완도 태안 앞바다의 해저유물들이 말해준다. 모두 이 ‘循海岸水行’이라는 방법으로 연안항해를 하다 조난당한 유물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감사합니다.
잡담 : 겨울비가 어제 오늘 맘껏 내리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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