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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09-12-14 14:15:58, Hit : 0, Vote : 0)
제목
隋書에 기록된 신라의 出自
隋書에 기록된 신라의 出自



국편에 있는 수서 신라전의 원문과 번역문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하였다.


/////[인용시작]
隋書 卷 081 東夷列傳 第 046

○ 新羅[註001]
新羅國, 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之地, 或稱斯羅. 魏將毌[校勘 071]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校勘 072]者遂爲新羅焉.[註002] 故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獩之地. 其王本百濟人,[註003]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校勘 071]「汲古閣本」에는 ‘母’로 되어 있다.
[校勘 072]『北史』「新羅傳」에는 ‘留’앞에 ‘有’字가 있다.

新羅國은 高[句]麗의 동남쪽에 있는데, 漢代의 樂浪 땅으로서 斯羅라고도 한다. 魏나라 장수 毋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고구려]는 沃沮로 쫓겨 갔다. [그들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 갔는데, [이때에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新羅를 세웠다.[註002] 그러므로 그 나라는 중국·고[구]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沃沮·不耐·韓·獩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王은 본래 百濟 사람이었는데,[註003]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이상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
/////

위의 국편 번역문은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이 이해하는 시각이며, 이러한 번역을 통하여 신라의 출자 중 하나를 毌丘儉과의 전쟁에서 찾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한 연구자들의 주장은 ‘新羅는 毋丘儉 侵略 때에 沃沮로 피난했던 고구려인들이 남아서 세웠다.’는 것이다.


신라의 출자에 대한 중국 정사의 기록에는 두세 가지가 있는데, 국편에 있는 주석에 잘 정리되어 있다. 윗글에 보이는 주석 [註002]의 일부를 인용한다.
/////
新羅의 起源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방향으로 기술되어 있다. 첫째는『三國志』「東夷傳」에 ‘古之亡人避秦役’이라 한 이후 이를 계승한『梁書』·『南史』·『北史』그리고『翰苑』의 기록이며, 둘째는『隋書』에서 毋丘儉의 侵入 때 沃沮로 피난했던 高句麗의 殘留民이라고 한 說로,『通典』·『文獻通考』가 이를 계승하고 있다. 셋째는 新羅를 弁韓의 후신으로 간주하는『新·舊唐書』·『册府元龜』등의 기록으로서 전자의 두 계통과는 다른 자료에 의거한 내용이다.
따라서 新羅는 중국 秦의 流亡人과 연결된 辰韓의 후예라는 것, 高句麗系 殘民이라는 것, 그리고 弁韓의 후예라는 것 등으로 그 出自가 복잡하게 전해지고 있다.
///// http://db.history.go.kr/front/dirservice/JO/viewJuJO.jsp?pPageLevel=6&pLevel=5&pType=T&pDatabaseID=jo_013_001&pRecordID=jo_013_001c_03_002


마지막 구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다시 요약하면,
① 중국 秦의 流亡人과 연결된 辰韓의 후예라는 것 [三國志, 梁書, 南史, 北史, 翰苑]
② 高句麗系 殘民이라는 것, [隋書, 通典, 文獻通考]
③ 弁韓의 후예라는 것 [新·舊唐書, 册府元龜]



필자의 이번 글은 “② 신라의 출자는 高句麗系 殘民”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문장을 새롭게 해석하여 잘잘못을 밝혀 보도록 하겠다.

살펴볼 구절은 아래와 같다.
①新羅國, 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之地, 或稱斯羅. ②魏將毌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者遂爲新羅焉. ③故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獩之地.

① 新羅國은 高麗의 東南에 있다. 漢나라 때는 樂浪之地에 거주하였다. 或은 斯羅로 稱한다.
② 魏將 毌丘儉이 高麗를 토벌하여 그들을 쳐부수니, 沃沮로 달아났다(奔). 그 후 다시 故國으로 돌아갔는데, 남아있는 자는(留者)는 드디어 新羅(新羅, 新羅人^^)가 되었다.
③ 故로 그 사람들은 華夏, 高麗, 百濟의 族屬이 섞여있고(雜有), 沃沮, 不耐 ,韓, 獩의 땅을 겸하고 있다(兼有).
// 이상 필자의 번역


위에 필자의 번역문을 적어놓았다. 수서 신라전의 기록은 크게 3개의 문장으로 구분이 된다. 필자는 편의 상 위에 ①, ②, ③으로 구분해 두었다.



먼저 ①(첫번 째 문장)은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없으니 통과

②(두번 째 문장)와 ③(세번 째 문장)은 좀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구분한 것을 기준으로 ③(세번 째 문장)의 첫 시작이 “故”이다. [“②~~ ③故 ~~” ^^]
“故”는 까닭, 理由 등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그러니, 두 문장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이해해야한다.

고구려인들이 毌丘儉의 침공을 받아 沃沮로 도망을 왔다가 돌아갔는데, 그 중 일부가 남아 그들이 신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원문을 보면 ‘留者遂爲新羅焉’이다. 이 ‘留者遂爲新羅焉’을 신라의 건국으로 이해하여 高句麗系 殘民에 의한 신라기원이라는 주장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완전 코미디이다. 수서의 기록은 ①(첫번 째 문장)에서 분명히 신라에 대한 출자를 기록해 두었다. 그러니 ‘留者遂爲新羅焉’에서 ‘新羅’라고 표현된 단어의 의미는 “故”로 이어지는 ③(세번 째 문장)에서 어떠한 결과의 원인 사건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단어이다. 원인과 결과가 분석되어야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럼 ③(세번 째 문장)을 간단히 분석해 보면, 신라인의 구성과 신라의 영토를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②(두번 째 문장)은 그러한 영토와 백성을 가지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음으로 파악해야한다. (아래는 번역문)
/////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獩之地. [=(其地)兼有沃沮·不耐·韓·獩之地]

故로
그 사람들은(백성의 구성) 華夏, 高麗, 百濟의 族屬이 섞여있다.
그 땅은(국토의 구성) 沃沮, 不耐, 韓, 獩의 땅을 兼有한다.
/////


관구검에 패배한 高句麗系 殘民이 신라를 건국하였기 때문에 신라는 華夏, 高麗, 百濟人들로 구성되어 있고, 땅은 沃沮, 不耐, 韓, 獩를 兼有한다는 것이 아니라, 관구검과 고구려와의 전쟁이후 변화된 신라를 구성하는 사람과 영토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니, 위 기록은 신라를 구성하는 華夏, 高麗人들이 바로 沃沮, 不耐, 獩 등에 거주하던 자들과 毌丘儉의 침공에 의하여 ‘留者遂爲新羅焉’한 고구려인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전쟁에 패배한 高句麗系 殘民이 沃沮, 不耐, 韓, 獩의 땅을 兼有하는 신라를 건국했다고 하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일 뿐이다.

그래서 ‘留者遂爲新羅焉’은 “남아있던 자가 드디어 신라인이 되었다.”로 번역되어야한다.

이것은 관구검과 고구려의 전쟁 이후 신라가 차지한 漁父之利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러한 신라의 영역은 진흥왕순수비가 보여주고 있는 신라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3세기 초 포상팔국과의 전쟁을 통하여 신라는 한반도 남부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을 예전 글에서 여러 차례 주장하였다. 이 수서의 기록은 “3세기 후반 신라는 沃沮, 不耐, 獩의 영역까지도 아우러는 강국”임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다음에 계속,.....
ver. 0.0001. 121027




잡담 : 생략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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