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개인의 역사, 그 개인이 소속된 지역의 역사, 더 나아가 국가의 역사, 세계의, 지구의, 궁극적으로 우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시원에 대한 의문을 추적하다보면 사건에 대한 원인과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그 인과관계의 끝자락에는 항상 더 이상 설명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벽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 그 벽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종교적 판단을 내리고 神을 상정하는 경우도 있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우주의 시원에 대하여 인류가 알아낸 과학적 판단은 ‘세상 모든 만물이 無에서 빅뱅을 통하여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탐구도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된다. 歷史書에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 특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인간들의 활동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기록되어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그 인과관계를 거슬러 추적해보면 또다시 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벽이 바로 卵生이다. 광개토대왕비문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추모왕에게 卵生을 이용하여 시조로써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것은 인과관계를 깨트리면서 고구려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을 살펴보면, 한반도 남단의 韓人들에 의하여 건국된 高麗는 卵生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추모왕에게 아비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바로 壇君이다. 즉 古記를 작성한 고려인들에 의하여 추모왕의 아비가 새롭게 창출된 것이다. 그 후 삼국사기가 새롭게 작성되면서 우리 역사의 시작은 또다시 卵生으로 확정된다. 고려인들의 기록인 삼국사기에는 자신들에게 피와 살과 DNA를 물려준 생물학적인 조상의 나라 新羅와 관련하여 赫孕琴에게 卵生을 이용하여 건국 시조의 지위를 부여하였고, 高句麗로부터 高麗라는 국호를 넘겨받았기에 고구려의 역사를 추모왕 기록의 본래 모습 그대로 난생을 이용하여 건국의 시작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卵生 이전의 역사적 실체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 중에는 인과관계가 단락된 기록이 많다. 인과관계가 단락되어 있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언가 오류가 포함된 경우이다. 그래서 그 오류를 찾아 인과관계를 복원하면 제대로 된 역사의 실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과관계가 단락된 기록 중에 탈해와 수로왕의 관계가 있다. 본고는 그 기록들을 살펴 올바른 인과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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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에서 ‘서기 102년 : 파사왕이 수로(61세)에게 영토분쟁을 맡김’으로 잘못 작성한 오류를 [아래]와 같이 올바르게 수정하였다.
아래/////
서기 108년 : 파사왕이 수로(67세)에게 영토분쟁을 맡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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