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댓글을 읽어보니 님은 박창화가 남긴 여러 기록들이 박창화의 창작이 아니라 박창화가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기록물이 있었고’ ‘그것을 필사했을 수도 있다’라고 추측하는 것 같으신데, 과연 그럴까여? 저는 그냥 박창화가 중국이나 한국의 정사나 아니면 다른 역사기록물 등을 기반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추가하여 역사기록인 양 적어놓은 역사소설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창화의 글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박창화의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럴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최근 간행된 역사관련 서적을 읽거나 역사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는 것이 훨씬 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여. 그러나 『박창화發 화랑세기』는 진위논쟁이 있어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고,,
『박창화發 화랑세기』는 1世는 魏花郞으로 2世는 未珍夫公으로 되어 있으며, 또 서문에 ‘先是 法興大王愛魏花郞 名曰花郞 花郞之名始此’라고 하여 ‘화랑’이라는 명칭의 시작은 魏花郞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世 魏花郞이라는 이름은 『박창화發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花郞世記』를 필사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따질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본문에 적혀있는 저의 글입니다. //////////// 참고로 필자는 예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하여 김대문이 작성한 『花郞世記』를 類推하면서 1대 화랑국선은 薛原郎이고, 2대 화랑국선은 未尸郞이라고 논증하였는데, 박창화가 필사했다고 알려진 『화랑세기』와는 전혀 다른 世代인 것이다. 이것은 명명백백 박창화가 『花郞世紀』라는 음란역사소설을 창작였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
만약 『박창화發 화랑세기』라는 것이 김대문의 『花郞世記』를 필사하였다고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삼국유사』에 보이는 1대 화랑국선 薛原郎과, 2대 화랑국선 未尸郞이라는 기록과 『박창화發 화랑세기』에 보이는 1世는 魏花郞, 2世는 未珍夫公이라는 기록의 차이점을 한 점 의혹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두 기록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없어 보입니다.
님은 이 두 기록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나여?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면 죽은 시체가 있어야 하고 그 범행에 사용된 흉기나 살해방법이 있어야합니다. 칼로 찔러 죽였던지 아니면 목졸라 죽였던지, 독살을 시켰던지,... 『박창화發 화랑세기』에서 보여주는 증거인 ‘先是 法興大王愛魏花郞 名曰花郞 花郞之名始此’라는 구절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박창화 스스로 창작했다는 이야기와 진배없는 것입니다. 일연이 살아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1대 화랑국선은 薛原郎이었기 때문이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