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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10-11-20 09:25:39, Hit : 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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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세에 國仙이 된 김유신과 진평왕대의 國仙 瞿旵公
18세에 國仙이 된 김유신과 진평왕대의 國仙 瞿旵公




앞서 필자는 ‘[박창화 發 화랑세기]는 음란소설이 맞다.’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 필자의 글 인용
삼국유사 金庾信조를 보면 “庾信公은 眞平王 17년 乙卯(서기 595년)에 났는데, 나이 18세가 되는 壬申(진평왕 34, 서기 612)년에 劍術을 익혀 國仙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 김유신전에는 “그가 15세에 花郞이 되었다.”고 하니 이 해는 진평왕 31년이다.

위 두 기록에 따르면, 김유신은 15세(진평왕 31, 서기 609)에 화랑이 되고, 18세(진평왕 34, 서기 612)에는 國仙이 된 것이다.
/////


[박창화 發 화랑세기]를 살펴보면 유신공이 15대 풍월주가 된 해를 建福 29년 임신년이라고 하였다. 이해는 서기 612년이다.


두 기록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김유신은 18세가 되던 서기 612년에 國仙이 되었다’는 표현이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는 ‘이해에 유신공이 15대 風月主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유신과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 쓰여있는 유신공은 동일인물이니 國仙과 風月主는 동일한 실체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필자는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서 삼국유사에 보이는 진흥왕대의 초대 국선 설원랑과 진지왕대의 미시랑의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음과 국선(=화랑세기의 풍월주)의 설치시기가 차이가 나는 것을 지적하였다.(사실 이것만으로도 [박창화 發 화랑세기]는 소설이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좀 더 살펴보기 위하여 삼국유사에서 국선이 표현된 기록을 계속 찾아보면,

國仙 구참공 (진평왕대)
국선 膺廉(=景文大王)
국선 요원랑 (景文大王대)
국선 부례랑 (효소왕대)

등이 보인다.


이번에는 [박창화 發 화랑세기]의 풍월주 관련기록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부분인 진평왕대의 국선 ‘구참공’의 기록을 조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중 惠宿이 好世郞의 무리 중에서 자취를 감추자 郞은 이미 黃卷에서 이름을 지워 버리니 혜숙은 赤善村(지금 安康縣에 赤谷村이 있다)에 숨어서 산 지가 20여 년이나 되었다. 그때 國仙 瞿旵公이 일찍이 적선촌 들에 가서 하루 동안 사냥을 하자 혜숙이 길가에 나가서 말고삐를 잡고 청했다. //중간 생략//공이 몹시 이상히 여겨 돌아와 조정에 아뢰니 眞平王이 듣고 使者를 보내어 그를 맞아오게 하니,... //이하 생략,
///// 삼국유사 二惠同塵조


김유신은 진평왕 34년에 국선에 임명되었다. 그러니 같은 진평왕대의 국선인 瞿旵公은 김유신이 임명되었던 전후시기에 국선으로 임명되었음이 확인된다. 이것은 김유신과 瞿旵公은 동시대의 인물임을 뜻하며 화랑이나 국선으로써 서로 교류가 있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위 기록에 보이는 國仙 瞿旵公도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서는 15세 풍월주 유신공 전후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김유신을 통하여 파악한 바로 삼국유사에 보이는 국선이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서의 풍월주와 같은 의미로 쓰였으니, 國仙 瞿旵公도 “몇 대 풍월주 瞿旵公”으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함이 지극히 당연한데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다.


즉 삼국유사 二惠同塵조 보이는 國仙 瞿旵公이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것이 소설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
화랑들의 우두머리가 삼국유사에는 國仙으로 기록되어있고,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는 풍월주라고 되어 있다. 이 두 표현이 김유신의 기록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박창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國仙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풍월주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 필자는 김유신을 제외하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국선(미시랑, 瞿旵公 등)이 [박창화 發 화랑세기]에서 보여지지 않고, 기록된 존재(설원랑 등)마저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박창화 發 화랑세기]가 창작된 소설이라는 명확한 증거라고 판단한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ver. 0. 0000. 7749








잡담 : 이제 화랑세기 이야기는 접을려고 합니다. 보면 볼수록 저의 눈에는 소설이라는 증거만 나타나내요. 또, 즐거운 주말이 찾아왔네요. 모든 분들 주말과 휴일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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