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본기 흘해이사금기에 기록되어 있는 碧骨池
삼국사기를 펼쳐보면 아래와 같이 흘해이사금기에 벽골지에 대한 기록이 있다.
/////// 관련 기록과 번역문/ 출처,... 진갑곤님의 삼국사기 ○九年, 春二月, 下令: 向以旱災, 年不順成. 今則土膏脉起{土脈膏起}, 農事方始, 凡所勞民之事, 皆停之.
趙炳舜. 『三國史節要』. 9년 봄 2월에 왕이 “지난 해에는 가뭄으로 농사가 잘 되지 못하였다. 이제 땅이 기름지고 생기가 돌아 농사가 바야흐로 시작되었으니 백성들을 노역시키는 일을 모두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二十一年, 始開<碧骨池>, 岸長一千八百步.
21년, 처음으로 벽골지에 물을 대기 시작하였다. 둑의 길이가 1천 8백 보였다. ///////
신라본기에는 ‘흘해이사금 21년(서기 330년)에 신라가 “벽골지”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신라가 만든 벽골지는 어디에 있었을까?
잘 몰라ㅋ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벽골제(碧骨堤)는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한 저수지로 대한민국 저수지의 효시이다. /////이하 생략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B2%BD%EA%B3%A8%EC%A0%9C
김제시의 위치는 동쪽으로 전주시·완주군, 남쪽으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익산시·군산시와 접하며, 서쪽은 황해에 면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설에 따르면 碧骨池가 있는 김제시는 백제의 영역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통설은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전면 다르다. 이것은 통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삼국사기의 흘해이사금 21년조의 기록을 철저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정당한 이유없이 무시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연구하는 태도가 아니다.
흘해이사금 21년은 서기 330년이다. 그럼 이 보다 백여년전에 이 지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을 잠깐 살펴보자.
馬韓在西。其民土著,種植,知蠶桑,作綿布。各有長帥,大者自名爲臣智,其次爲邑借,散在山海間,無城郭。有爰襄國、<중간생략>、伯濟國、<중간생략>、月支國、<중간생략>、楚離國,凡五十餘國。大國萬餘家,小國數千家,總十餘萬戶。辰王治月支國。臣智或加優呼 ///// 三國志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
위에서 우리가 살펴볼 부분이 2개가 있다.
1. 大者自名爲臣智(힘센 놈이 自名은 臣智라 했다.)에서 自名이란 스스로 부른 이름이란 말입니다. 2. 辰王治月支國(진왕이 월지국을 다스렸다.)에서 진왕은 바로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석씨신라왕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3세기 초 경상도 남부지녁에 있던 포상팔국을 병합하였고, 4세기 초에는 김제시에 있는 벽골지를 신라의 영역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3세기 중엽 신라가 마한의 月支國을 다스린다고 기록해 놓았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ver. 0.00000.0719
잡담 : 오늘이 초복이네요. 하루 일과를 마치면 아내랑 맛있는 식당에서 보신탕을 한 그릇 할까합니다. 벌써 점심 메뉴로 삼계탕이나 다른 보양음식을 드신 분도 많겠네요. 더운 여름 좋은 음식 많이 드시고, 다들 건강하게 올여름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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