辰國과 辰王에 대한 고찰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辰韓者,古之辰國也。/// 三國志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
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辰韓吊,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凡七十八國,伯濟是其一國焉。大者萬餘戶,小者數千家,各在山海閒,地合方四千餘里,東西以海為限,皆古之辰國也。/// 後漢書 卷八十五 列傳第七十五 東夷
필자가 인용한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에 辰國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한국의 고대사 인식체계는 큰 혼란이 있었다. 기록에 본 바와 같이 삼국지는 진한의 전신을 진국으로(辰韓者古之辰國也), 후한서는 삼한의 전신을 진국(皆古之辰國也)이라 하였다. 거의 대다수 연구자들은 이 글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서로 다른 내용을 전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1.후대의 기록인 후한서가 삼국지의 기사를 恣意的으로 變改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고와 2.무엇인가 典據가 따로 있었기에 삼국지와 기록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그러나 두 기록은 전혀 다른 기록이 아니다. 후한서는 2세기의 한반도를, 그리고 삼국지는 3세기의 한반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먼저 辰國과 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한다. 진국이 처음으로 기록된 사료를 찾아보면 바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이다.
관련 기록 인용 /////// 眞番旁衆[校勘 011]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校勘 011]『禮記』에 의하면 「宋本」에는 ‘辰’으로 되어 있다고 하며, 『考證』에도 「正義本」에는 ‘辰’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通鑑』과 『漢書』에도 ‘眞番·辰國’으로 되어 있으나, ‘衆國’이라 한 것도 문맥상 의미가 통한다. [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
[校勘 011]을 보면 현재 전해지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에는 旁衆과 辰國으로 기록된 2가지의 판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한서의 기록을 보면 동일한 내용이 //眞番辰國//으로 기록되어 있어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辰國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삼국지, 후한서 모두 辰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辰國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4대 정사기록에 일관되게 나타나있다. 최초의 기록인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眞番 옆의 辰國이 上書하여 天子에게 謁見하려 해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되어 있어 辰國은 漢字를 이용하여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辰國은 어디에 있었을까? 위만이 대동강 유역의 조선으로 망명한 후 준왕을 축출하고 손자 우거왕에 이르기까지 주위의 영역을 정복하여 진번, 임둔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된다. 이 지역이 바로 위만조선의 영역이자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하는 곳이니, 眞番 옆의 辰國은 어쩔 수 없이 한반도 남부지역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辰國은 우거왕과 불화가 있었던 朝鮮相 曆谿卿과 그를 따라온 二千餘戶를 받아들이기도 한다.(삼국지 한전)
자!! 이번에는 위만에 축출당한 준왕의 행적을 보면,
삼국지 한전에 그 기록이 나타난다.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魏略曰: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准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 其後絕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 三國志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
左右宮人과 바다로 도망쳐 韓地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韓王이라 호칭하였고, 그 후손은 絕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지금 韓人 중에 그의 제사를 지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準王이 韓地에 와서 韓人들에게 무언가 기억될 만한 행위를 했으니, 그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은 없어서,..
쉬어가기
여기서 좀 유의해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魏略을 인용한 부분이다. “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准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
子及親이라는 부분에서 及은 접속사이다.
인용/////// 필자의 예전 글 다음,, 위략을 인용한 주석 부분
魏略曰 : 魏略에 이르길 其子及親留在國者 : 그의 자손과 친척은 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因冒姓韓氏 : 韓氏로 姓을 冒한 까닭에 (韓氏를 冒姓한 까닭에) 準王海中 : 準王은 海中에 있으면서, 不與朝鮮相往來 :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 인용 끝
출처 :http://www.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2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34
인용/////// 필자의 예전 글 먼저의 글은 기자의 후손을 표방하는 淸州韓氏의 족보에 있는 글인데, 후대에 淸州韓氏가 족보를 만들면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其子及親(준왕의 자손과 친족들)’을 판독에 문제가 있는 宋本의 ‘其子友親(준왕의 아들 우친)’으로 이해하여, 友諒, 友誠, 友評(또는 友平)을 시조(?)로 하는 淸州韓氏, 幸州奇氏, 太原鮮于氏가 만들어졌다는 취지의 글이다. /////// 인용 끝
출처 : http://www.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2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8
참고 출처 : http://www.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2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0
쉬어가기 끝
辰國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4대 정사기록에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이상하게도 준왕관련 기록에서 韓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필자는 두 개의 표현에 대하여 조금 고민을 하였다. 삼국지나 후한서의 기록을 보면 분명 古자를 사용하여 韓보다 앞서는 시기에 辰國이 존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준왕이 韓地로 망명한 시기는 분명 朝鮮相 曆谿卿이 辰國으로 망명하는 것보다도 앞선 시기이다. 그렇다면 韓地라고 불리는 지역이 辰國과 같은 시기 존재하여야 한다. 이처럼 두 기록은 모순이다.
이제 이 모순을 해결해 보자.
필자는 예전 글들에서 앞서 삼국지의 기록에 등장하는 辰王이 한반도 남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석씨신라왕임을 밝혔다. 삼국지가 기록한 辰王은 사실 신라왕이다. 그리고 그가 다스리는 영역은 바로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 그리고 목지국을 위시한 마한지역이다. 그러니 석씨신라왕은 한반도 남부의 거의 대부분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한의 영역이며, 이 삼한은 거의 대부분 신라(즉 진한)의 영토인 것이다.
그런데 삼한의 영역 거의 대부분을 다스리는 석씨신라왕에게 삼국지는 韓王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辰王이라고 표현하였을까? 이것이 바로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의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의문은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韓이든 辰이든 그 것은 중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동방의 바다 건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종족 또는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는 진나라의 시황제나 한나라의 무제, 당나라의 태종 등을 다 하나 같이 중국황제라고 부른다. 그들이 다스린 나라가 진, 한, 당 등등 무엇이든 간에 그들을 중국황제라고 하면 의미가 통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辰이나 韓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다. 辰國이라는 명칭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살던 사람들이 스스로 부르던 명칭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과 교류하던 한반도 남부를 辰國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표현이 삼국지가 기록되는 시점까지도 죽 이어져왔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辰王은 “한반도 남부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나라의 왕”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때 후한서와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차이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후한서의 다음 기록을 좀 더 살펴보자.
初, 朝鮮王準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 攻馬韓, 破之, 自立爲韓王. 準後滅絶, 馬韓人復自立爲辰王. [처음 朝鮮王 準은 衛滿에게 깨뜨려진 바가 되어, 이에 그의 남은 무리 수천명을 이끌고 走入海하여, 마한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自立하여 韓王이 되었다. 準이 後에 絶滅하자, 馬韓人이 다시 自立하여 辰王이 되었다.] /// 後漢書 卷八十五 列傳第七十五 東夷
준이 스스로 한왕이 되었으나 그 후 絶滅하고, 馬韓人이 다시 自立하여 辰王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自立하여 왕이 된 마한인이 바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보이는 마한왕이다. 이 마한왕이 석씨신라에 앞서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 후한서의 찬자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중간 생략> 皆古之辰國也。”이라 하였으며, 그 삼한 땅을 다스리는 마한왕에게 辰王(즉 한반도 남부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나라의 왕)이라는 호칭을 부여한 것이다.
삼국사기를 펼쳐보면 이 마한왕(후한서의 진왕)이 낙랑으로부터 도망쳐온 조선유민에게 동계지를 나누어(?)주고, 그리고 고구려로부터 도망쳐온 온조왕에게 한강유역을 떼어주는 기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ver. 0.373.868
잡담 :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었는데, 이제 여름의 흔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찬바람이 쌩쌩 부네여. 이렇게 또 가을이 찾아오는군요. 환절기라 다들 건강조심 하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