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는 달리 냉수리 신라비는 소지왕이 薨한 후 8개월을 기다려 파로가 출산한 아들을 왕으로 삼은 것임을 알려준다. 지증의 딸이 갓 출생한 소지왕의 적자와 결혼함으로써 지도로는 갈문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 분명하다. 왕위 계승에서 장자 상속 원칙이 지켜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도로가 언제 痳錦의 지위에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3년 우경법, 4년 국호 제정, 5년 상복법 제정 반포 시행, 6년 주군현 확정 등 대대적인 개혁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사금갑사건’에서 비롯되었고 지증의 신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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