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전에 2번 기록되어 있는 假授, 拜假라는 단어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에 2번 기록되어 있는 假授, 拜假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하나는 景初二年十二月 위황제의 詔書와 정시원년에 기록되어 있고,. 今以汝爲親魏倭王,假金印紫綬,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정시 원년 太守弓遵遣建中校尉梯俊等奉詔書印綬詣倭國,拜假倭王
그리고, 其六年,詔賜倭難升米 黃幢,付郡假授。의 기록과 其八年의 기록에 遣塞曹掾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拜假難升米 로 나타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둘이 한 세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 魏의 황제가 비미호를 親魏倭王으로 삼고 金印紫綬를 내리면서, 대방태수에게 일차적으로 보내는데 이 때 假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태수가 建中校尉梯俊 等을 왜로 파견하여 가져다 주면서 拜假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2. 마찬가지로 難升米에게도 黃幢을 내리는데 군으로 보냈다가, 이 때 假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다시 군에서 塞曹掾史張政 等의 실무자를 파견하여 가져다 주면서 拜假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로보아 假授라는 표현은 아직 金印紫綬나 黃幢이 비미호나 難升米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고, 拜假는 金印紫綬나 黃幢을 받아 정식으로 임명됨을 표현한 조어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로 치면 반장에 당선되었지만, 아직 교장선생님의 정식의 임명장이 없는 상태를 ‘假授’로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임명장을 받은 상태를 ‘拜假’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아래는 제가 대충 번역해본 것입니다. 오역이 있더라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길,... ///////////////
景初二年六月,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求詣天子朝獻,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景初 2년(서기 238년) 6월, 倭女王이 大夫 難升米 등을 보내 군에 이르렀다. 천자에게 이르러 朝獻하기를 求하니, 태수 劉夏가 관리를 보내 마땅히 京都까지 호송했다.
其年十二月,詔書報倭女王曰「制詔親魏倭王卑彌呼: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巿牛利奉汝所獻男生口四人,女生口六人、班布二匹二丈,以到。汝所在逾遠,乃遣使貢獻,是汝之忠孝,我甚哀汝。今以汝爲親魏倭王,假金印紫綬,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其綏撫種人,勉爲孝順。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道路勤勞,今以難升米爲率善中郎將,牛利爲率善校尉,假銀印青綬,引見勞賜遣還。今以絳地交龍錦五匹、<생략> 紺青五十匹,答汝所獻貢直。又特賜汝紺地句文錦三匹、<생략>、鉛丹各五十斤,皆裝封付難升米、牛利 還到錄受 悉可以示汝國中人 使知國家。哀汝 故鄭重賜汝好物也。 그해 12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알려 말하길 “親魏倭王 卑彌呼에게 制詔함. 帶方太守 劉夏가 사자를 보내 너의 大夫 難升米와 次使 都市牛利를 호송하고 네가 바친 男生口四人,女生口六人、班布二匹二丈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너는 아득히 먼 곳에 있으면서도 사자를 보내 貢獻하니 이는 너의 忠孝로다. 내(我)가 너를 심히 갸륵하게 여겨, 이제 너를 親魏倭王으로 삼고, 金印紫綬를 내린다.(假) 裝封하여 帶方太守에게 맡겨 너에게 假授한다. 이에 種人들을 편안하게 어루만지고, 孝順에 힘쓰도록 하라. 너가 보낸 사자 難升米, (도시)牛利는 먼 길을 걸으며 부지런히 애썼으니, 이제 難升米를 率善中郞將, 牛利를 率善校尉로 삼아 銀印靑綬를 내렸다.(假) 引見하여(만나서 얼굴을 보고) 위로하고 상을 내려(勞賜) 되돌려 보낸다. 이제 絳地交龍錦 5匹, ..<생략>.. 紺青 50匹로써 너가 공물을 헌상한 바에 보답한다. 또한 특별히 너에게 紺地句文錦 3필, ..<생략>.. 鉛丹 각 50斤을 하사하는데, 이를 모두 裝封하여 難升米, 牛利에게 맡기니 도착하면 받도록 하여, 남김없이 너의 國中人에게 베풀어 주어 국가를 깨닫게 하라. 너를 갸륵하게 여기는 연고로 鄭重히 너에게 좋은 물건을 하사하는 것이다.”
正始元年,太守弓遵遣建中校尉梯俊等奉詔書印綬詣倭國,拜假倭王,並齎詔賜金、帛、錦罽、刀、鏡、采物,倭王因使上表答謝恩詔。 正始 원년(240년), 태수 弓遵이 建中校尉 梯儁 등을 파견하여 詔書와 印綬를 받들고 倭國에 이르렀다. 倭王을 拜假하고 아울러 조서와 같이 보낸 金、帛、錦罽、刀、鏡、采物을 하사했다. 倭王이 사자에 의뢰하여 表文을 올리고 恩詔에 보답하여 사례했다.
其四年,倭王復遣使大夫伊聲耆、掖邪狗等八人,上獻生口、倭錦、絳青縑、綿衣、帛布、丹木、犬付、短弓矢。掖邪狗等壹拜率善中郎將印綬。 정시 4년(243년), 倭王이 다시 大夫 伊聲耆 掖邪狗 등 8인을 사자로 보내, 生口, 倭錦, 絳靑縑, 緜衣, 帛布, 丹木, 犬付, 短弓矢를 헌상했다. 掖邪狗 등에게 모두 率善中郞將印綬를 내렸다.
其六年,詔賜倭難升米 黃幢,付郡假授。 정시 6년(245년), 조서를 내려 倭의 難升米에게 黃幢을 하사하고 郡에 맡겨 假授했다.
其八年,太守王頎到官。倭女王卑彌呼與狗奴國男王卑彌弓呼素不和,遣倭載斯、烏越等詣郡說相攻擊狀。遣塞曹掾史張政等因齎詔書、黃幢,拜假難升米 爲檄告喻之。卑彌呼以死,大作塚,徑百餘步,徇葬者奴婢百餘人。更立男王,國中不服,更相誅殺,當時殺千餘人。復立卑彌呼宗女壹與,年十三爲王,國中遂定。政等以檄告喻壹與,壹與遣倭大夫率善中郎將掖邪狗等二十人送政等還,因詣台,獻上男女生口三十人,貢白珠五千,孔青大句珠二枚,異文雜錦二十匹。 정시 8년(247년), 태수 王頎이 官에 도착했다. 倭女王 卑彌呼는 狗奴國의 男王 卑彌弓呼素와 더불어 불화하자, 倭의 載斯, 烏越 등을 파견하여 군에 이르러 서로 공격하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塞曹掾史 張政 등을 파견하여 詔書와 黃幢을 받들고 가서 難升米를 拜假하고, 격문으로 그 것을 고하고 알리게 하였다.
비미호가 죽었기 때문에 크게 무덤을 만들어 지름이 백여步였고, 奴婢 百餘人을 순장(狥葬=殉葬)했다. 다시 男王이 즉위하니, 國中不服하여 다시 서로 誅殺하여 이때 천여 명이 죽었다. 다시 卑彌呼의 宗女인 壹與를 세워 나이 13세에 왕이 되니, 나라 안이 마침내 안정되었다. 張政 등이 격문으로써 壹與에게 고하고 알렸다. 壹與는 倭의 大夫 率善中郞將 掖邪狗 등 20명을 파견하여 張政 등을 호송하여 돌려보내고, 台에 이르러 男女生口三十人을 헌상하고 白珠五千,孔青大句珠二枚,異文雜錦二十匹을 공납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ver 0.0.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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