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川王 21年條] 記事 檢討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東川王 21年條 기사는 다음과 같다. 二十一年 春二月(1)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2) a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b或云王之都王險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아래와 같다. "21년(247) 春二月에 (1)왕은 丸都城이 난을 겪어서 다시 도읍으로 不可하여, 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겼다. (2)a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의 宅이다. b或云 王之都王險." (2)부분은 中宗 壬申刊本에는 본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平壤者로 시작하는 문장의 서술형식과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로 볼 때 分註의 성격이 강하다. 이 分註의 성격이 강한 (2)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래서, (2)문장을 살펴보면 或云을 경계로 2개의 부분(a와 b)으로 구성되어 있다. 或云을 포함하는 문장은 보통 “□□ 또는, □□” 아니면, “□□라고도 하고 □□라고도 한다.”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2)a의 문장은 종결어조사 也를 가지고 있는 완전한 문장이다. 그러나 (2)b의 문장은 (2)a의 문장과는 구조가 다르다. 王之都王險 만으로는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 문장에서 或云은 접속사이니, 或云과 王之都王險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생략된 부분을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에서 찾아보자. 1)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平壤者)王之都王險(也) 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의 宅이다. 或云 平壤은 王의 도읍인 王險이다. ==> 문장의 의미가 매끄럽지 못하다. “王의 도읍인 王險”이라는 말의 의미가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2) 或云과 王之都王險 사이에 (平壤者本仙人)이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된다.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平壤者本仙人)王之都王險(也) 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의 宅이다. 或云 平壤은 본래 仙人王의 도읍인 王險이다. 명확하게 뜻이 통한다. 或云을 경계로 2개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1. 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의 宅이다. 或云 2. (平壤은 본래 仙人)王의 도읍인 王險이다.(==> 平壤 = 仙人王의 도읍 = 王險) 그렇다면 平壤의 仙人王 또는 仙人王儉은 누구인가? 그 답은 趙延壽墓誌(조연수묘지)의 기록이다. [1325년(고려 충숙왕 12년)에 작고] /////// 平壤之先 仙人王儉 至今遺民 堂堂司空 平壤君子 在三韓前 壽過一千 胡考且仙 /////// 참고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448 다음에 계속,....... ver. 0.04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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