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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09-03-01 00:51:44, Hit : 1589, Vote :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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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職貢圖에 있는 요서 진평현
梁職貢圖에 있는 요서 진평현


[梁職貢圖]는 후에 梁원제로 즉위하게 되는 태자 소역(蕭繹)이 형주자사로 재임하던 기간(526- 539)에 梁과 조공관계를 맺은 35개국의 사절을 그린 그림이다.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은 원본을 1077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으로 12개국의 使臣圖가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백제의 使臣圖이며, 使臣圖와 함께 백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義熙中, 其王餘腆, 宋元嘉中其王餘毗, 齊永明中其王餘太, 皆受中國官爵, 梁初以太 除征東將軍, 尋爲高句驪所破, 普通二年, 其王餘隆遣使奉表云, 累破高麗, 所治城曰固麻,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新羅, 止迷, 麻連, 上己文, 下枕羅 等附之. 言語衣服略同高麗, 行不張拱拜不申足, 以帽爲冠, 襦曰複袗,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 /////

백제가 중국의 遼西지역을 略有한 적이 있다고 하는 이른바 ‘遼西進出說’ 또는 ‘遼西經略說’의 기본 사료 중 하나이다.


이보다 앞선 시기의 기록으로 송서가 있다. 송서는 南朝 齊의 武帝 영永明6년(서기488년)에 삼약(沈約,서기441년~513년)이 편찬한 사서이니, 梁職貢圖보다는 약 40년 정도 빠른 기록이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百濟國,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其後高驪略有遼東,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百濟國은 본래 高驪(livemiri주/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있다. 그 후 고려가 遼東을 略有하자 백제는 遼西를 略有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은 晉平郡 晉平縣이라 한다. ([宋書] 卷97 列傳57 夷蠻 東夷 百濟國)


그 다음은 梁職貢圖보다 100년 정도 뒤인, 唐 太宗 貞觀3년(서기629년)에서 10년(서기636년) 사이에 姚思廉이 편찬한 梁書와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百濟者,<중간 생략>。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晉世句驪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백제는 ....... 그 나라는 본래 句驪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다. 晉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略有하자, 백제 또한 遼西, 晉平 2군의 땅을 점거하고, 百濟郡을 설치하였다. ([梁書] 卷54 列傳48 諸夷 東夷 百濟)


그 뒤의 역사서인 南史, 통전 등에도 백제가 요서를 略有한 기록들이 보인다. 이들 사서에 보이는 내용은 하나 같이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略有하였다.”는 것이다.


양직공도의 비슷한 부분을 살펴보자.
百濟舊來夷馬韓之屬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이 기록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세 개의 문장으로 이해하여 첫 문장은 백제, 중간은 駒驪, 그리고 마지막은 樂浪을 주어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백제는 예부터 내려오는 동이의 마한에 속한다.(또는, 백제는 옛날의 來夷로 馬韓의 속국이다.) 晉末에 句麗가 요동을 공략하여 차지하니, 樂浪 역시 요서 晋平縣을 차지하였다.”로 이해하여 왔다.


과연 이러한 이해가 타당할까?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은 단 하나이다. 그 사건을 이해하는 사고는 다를 수 있어도 역사적 사실은 같아야한다. 송서와 양서 등의 역사 기록에는 요서를 略有한 주체를 백제로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연구자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양직공도에 대해서는 다르다. 백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문법적 기능]에 낙랑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먼저 양직공도에 기록된 문장을 새롭게 배열해 보자.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 有遼西晉平縣.
백제는 예로부터 동이마한[來夷馬韓]에 속해있었는데, 晉末에 駒驪가 이미 遼東樂浪을(요동, 낙랑을//요동의 낙랑을) 略有하자 (백제) 또한 遼西 晉平縣을 略有하였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에서 “來는 東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지금의 양직공도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2c의 모사본이다 보니, 6c의 원본이 전해지는 과정에 글자의 자획이 변질, 탈락하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

晉末
駒驪旣略有遼東樂浪,

(百濟略)有遼西晉平縣.

문장의 의미로 보아, 亦 바로 다음에 百濟略이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요동의 낙랑]과 [요서의 진평]이 잘 呼應한다. 그리고 뜻이 명확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조금 의역을 해보면,
“백제는 옛날 동이 마한에 속해 있었는데, (그 후에 힘이 좀 세져서)晉末에 고구려가 요동 낙랑을 공격해서 차지하자, 또한 (백제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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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2009-03-02 09:01:07)
양직공도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다시 보니 의미가 들어 오는군요.

百濟舊來夷馬韓之屬
= 백제는 옛 來夷, 마한의 속국이였다.

문장 구조를 파악하니,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중간에 고구려의 요동,낙랑 문장은 삽입된 문장이군요.
전체주어는 百濟이며, 3번째 문장의 주어이기도 합니다.
첫번째 문장에서 舊라는 글자를 쓴 것은 백제의 초기시절에는 마한의 속국이였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백제 초창기에는 마한의 속국이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죠.

"백제는 초기에는 마한의 속국이였으나, 그러나, 晉나라 말경에, 고구려가 요동의 낙랑을 약유하자, 백제도 역시 요서 진평현을 약유하였다"

앞,뒤로 문장이 역접관계로서 의미가 퍼펙트하게 들어옵니다. 그러니 문맥이 맞아 들어가죠.

"백제는 초기에 마한의 속국으로서 보잘 것 없는 나라였으나, 300년대에 고구려가 강성해져서 요동 낙랑군을 약유하자, 백제도 덩달아 요서 진평현을 약유하였다"

晉나라 말이란 西晉을 의미하겠죠.

西晉= 265년~ 316년
東晉= 317년∼419년

東晉은 양자강이남땅을 주무대로 했다니까.. 고구려,백제와는 관련이 적을테고, 위 문장에서 말하는 晉末= 西晉밖에 없는거죠.

미천왕 313년에 낙랑군을 점령하였고,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약유한 시기는 위의 문장으로는 313년이후라는 것만 알 수 있고,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라디오 (2009-03-03 15:15:27)
西晉에서 東晉으로 중국이 정권이 교체되는 약화된 틈을 타고 미천왕이 낙랑군을 흡수를 했으니..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백제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죠.

백제 比流王(비류왕) 304년 ~ 344년.

비류왕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는.. 을불대왕전 뒷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304년에 등극한 연도는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313년이후 10년안에 백제도 움직였다고 봤을 때,
요서를 점유한 백제왕은 '比流王(비류왕)'일 것입니다.
재위기간도 41년으로 무척이나 길잖아요.
라디오 (2009-03-04 01:02:09)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梁書] 卷54 列傳48 諸夷 東夷 百濟)

梁書에 앞서 亦據有라는 문장 패턴이 나왔기 때문에..

양직공도 문장의 생략된 부분은 이렇게 되지요.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百濟)亦(略)有遼西晉平縣

駒驪旣略有
百濟亦略有

亦 字가 들어간 한문은 이렇게 하나의 패턴으로 되어 있습니다.
livemiri (2009-03-04 15:03:55)
라디오님 曰
西晉에서 東晉으로 중국이 정권이 교체되는 약화된 틈을 타고 미천왕이 낙랑군을 흡수를 했으니..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백제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죠.
[중간생략]
313년이후 10년안에 백제도 움직였다고 봤을 때,
요서를 점유한 백제왕은 '比流王(비류왕)'일 것입니다.
재위기간도 41년으로 무척이나 길잖아요.

livemiri 曰
저의 글은 “백제가 요서를 略有했다. 또는 略有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함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글의 본문에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잘 읽어 보면 “양직공도의 기록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자 함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낙랑(313)과 대방(314)을 한반도에서 축출한 후, 그 유민들은 요동 지역으로 이동헤 갑니다. [진서 지리지]에 보이는 낙랑과 대방이 바로 이 때 옮겨간 것이지요. 이 지역을 “고구려와 백제가 약유했다.”는 것이 양직공도에 기록된 내용이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연구자들 사이에 “백제는 요서를 略有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질문// 님은 요서를 점유한 백제왕은 '比流王(비류왕)'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는데, 그 근거를 부탁드립니다.



라디오님 曰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梁書] 卷54 列傳48 諸夷 東夷 百濟)

梁書에 앞서 亦據有라는 문장 패턴이 나왔기 때문에..

양직공도 문장의 생략된 부분은 이렇게 되지요.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百濟)亦(略)有遼西晉平縣

駒驪旣略有
百濟亦略有

亦 字가 들어간 한문은 이렇게 하나의 패턴으로 되어 있습니다.

livemiri 曰
문장에서 亦의 위치가 어디에 있던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님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livemiri

라디오님이 (2009-03-03 15:15:27)에 쓰신 글

西晉에서 東晉으로 중국이 정권이 교체되는 약화된 틈을 타고 미천왕이 낙랑군을 흡수를 했으니..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백제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죠.

백제 比流王(비류왕) 304년 ~ 344년.

비류왕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는지는.. 을불대왕전 뒷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304년에 등극한 연도는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313년이후 10년안에 백제도 움직였다고 봤을 때,
요서를 점유한 백제왕은 '比流王(비류왕)'일 것입니다.
재위기간도 41년으로 무척이나 길잖아요.



라디오님이 (2009-03-04 01:02:09)에 쓰신 글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梁書] 卷54 列傳48 諸夷 東夷 百濟)

梁書에 앞서 亦據有라는 문장 패턴이 나왔기 때문에..

양직공도 문장의 생략된 부분은 이렇게 되지요.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亦有遼西晉平縣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旣略有遼東樂浪 (百濟)亦(略)有遼西晉平縣

駒驪旣略有
百濟亦略有

亦 字가 들어간 한문은 이렇게 하나의 패턴으로 되어 있습니다.
라디오 (2009-03-05 07:16:51)
백제 사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근거는 없고 추측일 뿐이죠.
양직공도의 문장의 문맥으로 고구려 요동약유 이후에 얼마지 않아 백제도 움직였다는 걸 의미하죠.

(百濟)亦(略)有遼西晉平縣

이것은 따질 꺼리도 못 되죠. 자신의 고집이 쎄서 남의 말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일뿐.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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