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주(風月主)ㆍ화랑(花郞)

법흥왕(法興王) 원년(元年)에 동남(童男)으로 얼굴과 풍채가 단정한 자를 뽑아서 풍월주(風月主)라 부르며, 착한 선비를 구하여 무리를 만들어 효(孝)ㆍ제(悌)ㆍ충(忠)ㆍ신(信)을 장려하였다. ○ 처음에 신라의 임금과 신하들은 인재를 알 수 없음을 근심하고, 무리를 지어 모여 놀게 하여 그들의 행의(行義)를 살펴본 뒤에 등용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아름다운 여자 두 사람을 뽑아서 원화(源花)를 삼았으니, 이름은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인데, 모인 무리가 3백여 명이었다. 두 여자는 미모를 서로 다투어 질투하였다. 준정이 자신의 집에 술을 준비하고 남모에게 억지로 권하여 취하자 물에 던져 죽였다. 남모의 무리들이 그 시체를 찾아가지고 고발하여 준정은 사형을 받았다. 드디어 원화(源花)의 제도를 폐지하였다. 그 뒤에 다시 얼굴이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단장시켜서 화랑(花郞)이라 칭하니, 많은 무리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혹은 도의(道義)로써 서로 권면(勸勉)하고, 혹은 노래와 풍악으로 서로 즐기면서 산과 물의 경치를 찾아다니며 노닐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의 간사한 것과 바른 것을 알게 되어 가려서 등용하였다.

칼춤의 유희

황창랑(黃倡郞)은 신라 사람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 살 때에 백제(百濟)의 시가에 들어가서 칼춤을 추니, 구경꾼들이 담처럼 둘러섰다. 백제의 임금이 듣고 그를 불러다 보고는 마루에 올라와서 칼춤을 추라고 명령하였다. 창랑은 기회를 타서 백제왕을 칼로 찔렀다. 백제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겨 그의 얼굴 모습을 본떠서 탈을 만들어서 칼춤 추는 형상을 하였는데, 지금도 그 탈춤이 전하고 있다.” 한다.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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