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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08-12-20 23:07:20, Hit : 1215, Vote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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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 중 신묘년조의 정확한 이해
광개토대왕비문 중 신묘년조의 정확한 이해


광개토대왕비문 중 신묘년조는 아직도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비문조작설에서부터 문장의 문법성분을 따져 해석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은 첨예한 대립을 하여 감정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적도 많이 있었다. 그 문장은 아래와 같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

판독자에 따라서 몇 개의 한자가 다를 수도 있다. 먼저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에 대하여는 거의 모든 연구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하나 같이 “백잔과 신라는 예부터 속민이다. 그래서 조공을 해왔다.”라고 해석되어진다.

그 다음부터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장이다.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
이 문장을 해석함에 연구자에 따라서 문장의 주어가 몇 번이고 바뀌기도 한다. 아마 그 이유는 자신이 보고 싶어하고, 만들고 싶은 역사를 위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진정한 연구자의 시각은 아니다. 위의 이 문장은 일관되게 倭를 주어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비문에 쓰여진 글은 정확한 의미가 파악되어져야 한다. 그 해석은 아래와 같다.

而(접속사) 倭(주어)가 以辛卯年(신묘년에) 來 渡海(渡海/바다를 건너/하여 와서) 破百殘(百殘을 破하고) □□□羅(□羅를 □□하여) 以爲臣民(臣民으로 삼았다.)

글의 의미는 간단명료하다.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屬民이었는데, 신묘년에(以)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그 구도를 깨뜨리고,백잔과 신라를 도리어 왜의 臣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倭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十年庚子에 기록되어 있는 任那加羅이다. 任那加羅의 歸服이 이루어지고 실질적으로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그 땅에 남아있는 자가 있고, 또 멀리 도망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비교하면 남은자와 떠나간자를 알 수 있다.


(2003-03-13 11:38:34)에 제가 이곳에서 적은 글의 일부입니다.
/////////////////

가락국기가 쓰여진 내력


먼저 김성호박사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 기원]에서 일부를 인용합니다.

P200을 보시기 바랍니다.

//////
枕流王이 즉위 한지 1년 만에 서거하자, 그의 동생이던 辰斯는 太子(阿莘)가 年小하다는 핑계로 王位를 빼앗았다. (livemiri 주 : 중간 중간 생략합니다)

AD 392年 10月 광개토태왕이 關彌城을 공략하여 빼앗음.
10여일 간의 辰斯王 田獵(392년 11月)
辰斯王의 소식이 應神에 傳達
應神의 紀角宿禰 派遺
紀角宿禰의 裏面工作
狗原行宮에서 辰斯王 弑害(392년 11月)
阿莘王의 擁立(392년 11月)
紀角宿禰의 歸還報告(392년 11月)

(livemiri 주 : 일본서기 응신기의 3년 9년조 기록도 같이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당시의 應神이 멀리 떨어진 畿內에 위치해 가지고, 위와 같은 복잡한 사태가 과연 [11月中]에 진행될 수 있었을까? 당시의 通信手段이라야 人便傳達밖에 없었을 것임을 고려 할 때, 이러한 쌍방간의 사태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應神이 畿內가 아니라 ..任那加羅從拔城..(김성호박사는 광개토태왕비에 기록된 잔국에 착안하여 비류백제를 상정하고 그 말왕 응신의 왕성이 熊津이라고 함livemiri ==> 잔국은 문법적인 한계를 뛰어 넘은 변경해석이다.) 에 있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점은 어떠한 先入見이나 理念性 또는 變更解釋을 하지 않고 原文대로 읽기만 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결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

百殘新羅, 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광개토태왕비의 倭관련 기록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저의 개인적 감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옵니다. 임나가라국 응신의 용병으로써 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보이는 것처럼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전복 해삼을 따다 먹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양식이 다 떨어지면 배를 타고 교역도 하고, 약탈도 하고, 그러다가 구걸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응신의 기병과 보병에 의하여 대고구려전을 펼치기 위하여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화살받이의 역할만을 하고 있어요. 고구려군이 나타나면 도망가기에 바빴을 것입니다. 응신은 인해전술로 나왔던 것이지요. 그 倭人들은 고향생각도 나고, 妻子도 생각이 나고,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겠지요. 창과 칼 불화살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사지가 절단되고, 머리가 베어지고....... 광개토태왕에게 ..任那加羅從拔城..이 점령되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웠을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제가 파악하는 광개토태왕비의 倭관련 기록의 실체입니다.

근데 저의 머리 속을 채우는 또 하나의 슬픔은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1600년 전과는 다른(?) 일본인들이 [임나일본부]와 [남선경영]을 가지고 다시 한반도에 나타난 것이지요.
우리의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국 땅에 끌려가 ...............

일본서기를 읽어보면 그 후의 과정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서기 응신기 7년 14년 16년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거대한 물결이 일본열도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 들을 데려가는 지도자는 궁월군입니다. 그가 응신 이후 인덕 천황으로 즉위하는 것이지요. 그는 일본열도 구주에 있으면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갑니다. 말 그대로 [인자하고 덕이 있는 임금]입니다.

///////////////// 일부 인용 끝

5년 전에는 ‘왜가 용병으로 왔다’고 생각을 하였지만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판단은 “임나가라=비문의 왜”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는 한반도에서 자신의 고향(가야)을 읽고 일본열도로 떠나가는 큰 흐름이 두 번 나타난다.

한번은 나해이사금 때 신라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일본열도로 떠나가는 비미호의 무리가 있다. 또 하나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에 패배한 응신이 한반도의 정든 고향을 버리고 일본열도로 도망쳐간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그들을 어머니와 아들로 설정하고, 그 때의 기년을 조작함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숨겨놓았다. (livemiri주 : 일본서기 응신이후의 기년은 김성호 박사의 책 “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 2000”을 참고바람)

남은 무리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또, 그 들의 후손 중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탄생시킨다. 그에 의하여 삼한일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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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벌가리 (2008-12-20 23:58:15)
삼국통일이란 말은 안쓰셨군요. 삼한이 한 줄기고 흐르게 되었다.
오늘 역사추적을 보니 옹성의 밑돌을 공주성주가 빼버렸다는 것을 보고
이제까지 교육받은 역사가 얼마나 허망한 주장이었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삼국통일이라면 고구려땅 백제땅 신라땅이 모두 한 덩이가 되어야 할것입니다만
신라에 의한 고구려 백제 멸망은 삼한일통으로 가는 길이 맞겠지요?
소벌가리 (2008-12-21 00:07:06)
하나 반론을 하고 싶습니다.

백제가 곤궁함에 이르자 399년 왜와 화통(구원요청)을 합니다. 이때 온 왜는 신라땅을 밟고 넘어옵니다. 백제가 왜의 구원을 요청함에 따라 신라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에 신라왕이 영원히 노객이 되겠으니 살려달라고 하자 신라로 보기 5만을 파견합니다. 그때 남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군이 득시글거렸다고 했습니다.

임나가라 하나에만 왜군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livemiri (2008-12-21 10:27:43)
소벌가리님이 (2008-12-20 23:58:15)에 쓰신 글

삼국통일이란 말은 안쓰셨군요. 삼한이 한 줄기고 흐르게 되었다.
오늘 역사추적을 보니 옹성의 밑돌을 공주성주가 빼버렸다는 것을 보고
이제까지 교육받은 역사가 얼마나 허망한 주장이었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삼국통일이라면 고구려땅 백제땅 신라땅이 모두 한 덩이가 되어야 할것입니다만
신라에 의한 고구려 백제 멸망은 삼한일통으로 가는 길이 맞겠지요?



소벌가리님이 (2008-12-21 00:07:06)에 쓰신 글

하나 반론을 하고 싶습니다.

백제가 곤궁함에 이르자 399년 왜와 화통(구원요청)을 합니다. 이때 온 왜는 신라땅을 밟고 넘어옵니다. 백제가 왜의 구원을 요청함에 따라 신라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에 신라왕이 영원히 노객이 되겠으니 살려달라고 하자 신라로 보기 5만을 파견합니다. 그때 남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군이 득시글거렸다고 했습니다.

임나가라 하나에만 왜군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소벌가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차차 제 의견을 개진하겠습니다.




수정 :
광개토대왕비문을 옮겨 적은 글 중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에서

마지막 부분의 討利殘國은 제가 인터넷에 있는 글을 ctrl+c, ctrl+v 하면서 신중하지 못하여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이제 討伐殘國으로 수정합니다.


수정 후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
카오스 (2008-12-21 22:27:01)
음... '倭의 실체'라.....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屬民이었는데, 신묘년에(以)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그 구도를 깨뜨리고, 백잔과 신라를 도리어 왜의 臣民으로 삼았다.’는 것/...즉, 신묘년조는 주어가 '倭'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카오스는 '한표'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그렇다면 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倭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十年庚子에 기록되어 있는 任那加羅이다./...에는 '반대표'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일도안사님의 말대로 (뭐 하나마나한 소리이겟지만,) .../'이 倭의 실체는 일본서기를 쓴 倭이다'/...라는 표현에 '한표'입니다.

그래서 이 '倭의 실체'에 대해서 카오스 나름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倭'는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倭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倭는 가공된 명칭'이니까요...(물론 나중에는 일본의 전신이 되는 세력이긴 하지만,...이 당시에는 그랬었다[가공이었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하시지요....그래서, 모두들 수백년 동안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livemiri (2008-12-21 23:46:36)
카오스님이 (2008-12-21 22:27:01)에 쓰신 글

음... '倭의 실체'라.....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屬民이었는데, 신묘년에(以)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그 구도를 깨뜨리고, 백잔과 신라를 도리어 왜의 臣民으로 삼았다.’는 것/...즉, 신묘년조는 주어가 '倭'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카오스는 '한표'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의 .../그렇다면 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倭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十年庚子에 기록되어 있는 任那加羅이다./...에는 '반대표'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일도안사님의 말대로 (뭐 하나마나한 소리이겟지만,) .../'이 倭의 실체는 일본서기를 쓴 倭이다'/...라는 표현에 '한표'입니다.

그래서 이 '倭의 실체'에 대해서 카오스 나름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倭'는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倭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倭는 가공된 명칭'이니까요...(물론 나중에는 일본의 전신이 되는 세력이긴 하지만,...이 당시에는 그랬었다[가공이었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하시지요....그래서, 모두들 수백년 동안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 livemiri


카오스님 曰
음... '倭의 실체'라.....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屬民이었는데, 신묘년에(以)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그 구도를 깨뜨리고, 백잔과 신라를 도리어 왜의 臣民으로 삼았다.’는 것/...즉, 신묘년조는 주어가 '倭'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카오스는 '한표'입니다....

livemiri 曰
제 의견에 한표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ㅎ!^



카오스님 曰
그런데, 그다음의 .../그렇다면 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倭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十年庚子에 기록되어 있는 任那加羅이다./...에는 '반대표'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일도안사님의 말대로 (뭐 하나마나한 소리이겟지만,) .../'이 倭의 실체는 일본서기를 쓴 倭이다'/...라는 표현에 '한표'입니다.



livemiri 曰
저의 본문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인용
한번은 나해이사금 때 신라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일본열도로 떠나가는 비미호의 무리가 있다. 또 하나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에 패배한 응신이 한반도의 정든 고향을 버리고 일본열도로 도망쳐간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그들을 어머니와 아들로 설정하고, 그 때의 기년을 조작함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숨겨놓았다.
/////인용 끝

‘가야인들이 2번에 걸쳐 일본열도에 갔다. 그리고 그들이 그 곳에서 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들의 살아온 흔적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기록했을까요?

그리고 저의 주장은 ‘그 가야인들을 비문에서는 ‘倭’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차차 드리지요.



카오스님 曰
그래서 이 '倭의 실체'에 대해서 카오스 나름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倭'는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倭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倭는 가공된 명칭'이니까요...(물론 나중에는 일본의 전신이 되는 세력이긴 하지만,...이 당시에는 그랬었다[가공이었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하시지요....그래서, 모두들 수백년 동안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livemiri 曰
제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답글을 달기가 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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