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繼體天皇 25년조의 주석문
●『日本書紀』卷十七繼體天皇二五年(辛亥五三一)冬十二月庚子《五》◆冬十二月丙申朔庚子。葬于藍野陵。〈或本云。天皇卄八年歲次甲寅崩。而此云。卄五年歲次辛亥崩者。取百濟本記爲文。其文云。大歲辛亥三月。師進至于安羅營乞乇成。是月。高麗弑其王安。又聞。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由此而。辛亥之歲當卄五年矣。後勘校者知之也。(다른(或) 本에 이르길 天皇은 28년 歲次 甲寅에 崩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길 25년 歲次 辛亥 崩한 것은 百濟本記를 취한 문장이다. 그 문장에 이르길 大歲 辛亥 三月에 군사가 安羅에 진격하여 乞乇成에 주둔했다. 이 달에 고구려가 그 왕 安을 살해했다. 또 들으니, 日本의 天皇과 太子 皇子가 한꺼번에 崩, 薨하였다. 이러한 연유로써 辛亥之歲는 당연히 25년이다. 후에 勘校하는 자는 그것을 알 것이다.)〉
일본서기 계체 25년의 기록은 繼體天皇의 사망과 관련하여 두 개의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 하나는 재위 28년에 사망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위 25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재위 25년에 사망한 것을 취하여 계체천황의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주석을 같이 남겨, 25년에 사망한 것을 취사선택한 연유를 밝혀놓았는데, 그 것은 바로 백제본기의 기록를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본기를 인용한 주석문은 其文云 뒷부분으로,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다.
① 師進至于安羅營乞乇成 (군사가 안라에 진격한 사건) ② 高麗弑其王安 (고구려에서 안장왕이 피살된 사건) ③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 (일본의 天皇, 太子, 皇子가 몰살당한 사건)
그래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관련기록을 찾아보면 성왕 10년으로 十年 秋七月甲辰 星隕如雨(10년[서기 531년] 가을 7월 초하루 갑진에 별이 비오듯이 떨어졌다.)로 되어 있을 뿐 일본서기가 인용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 : 성왕(聖王, 26대, 명농) 31년 재위(523~554)
그래서 여러 다른 역사서를 통하여 위 기록을 좀 살펴보면 ①번은 확인할 수 없고 ②번은 안장왕이 피살된 해에 대해서 양서에는 526년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531년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이 일본서기에 인용된 주석문과 일치한다.
이제 ③번을 살펴보자.
일본서기에 따르면 繼體天皇은 武烈天皇이 사망한 후 자녀가 없어 대를 이을 수가 없게 되자, 대신들에게 추대되어 天皇에 오른다.
繼體天皇의 자식에 관한 기록은 즉위 원년 3월조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기록을 보면 皇后와 妃에 대한 자세한 기록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皇子, 皇女)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手白香皇女를 皇后로 맞아들이기 전부터 있었던 元妃인 尾張 連草香의 딸 目子媛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들은 繼體天皇의 사망 이후 安閑天皇, 宣化天皇으로 차례대로 天皇이 된다. 그 후 宣化天皇이 사망한 후에서야 手白香皇后와의 사이에 태어난 嫡子인 欽明天皇이 540년에 天皇이 된다.
이처럼 繼體天皇의 자식들 중 3명은 天皇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太子皇子가 한꺼번에 몰살을 당했다고는 판단되지가 않는다. 그러나 주석문의 기록은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라고 되어 있어 일본서기 자체의 기록과 상충된다.
일본서기를 작성한 자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서기 자체의 기록과도 상충되는 백제본기의 기록을 이용하여 繼體天皇의 재위기간을 25년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것은 바로 일본서기가 기년을 왜곡하여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서기는 1대 신무천황부터 주~~욱 의봉력으로 기년이 기록되어 있고, 대략 안강천황 원년 이후 원가력으로 기년이 작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원가력은 송나라 원가 22년(서기445년)에 처음 제정되어 백제를 통하여 일본에 전래된다.(6c 중반)
참고 : 일본서기는 欽明天皇 14년조에 曆博士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日本書紀』卷十九欽明天皇十四年(五五三)六月◆六月。遣內臣〈闕名。〉使於百濟。仍賜良馬二疋。同船二隻。弓五十張。箭五十具。勅云。所請軍者。隨王所須。別勅醫博士。易博士。曆博士等。宜依番上下。今上件色人正當相代年月。宜付還使相代。又卜書。曆本種種藥物可付送。
그렇다면 원가력이 일본에 전래되기 전의 역사 기록은 그 당시에 사용하던 책력에 의하여 기록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의봉력은 唐나라 高宗 인덕 2년에 이순풍이 만든 것이니 적어도 안강천황 이전의 기록은 인위적으로 기년을 하나하나 계산하여 수정을 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이러한 수정작업과 함께 천황의 재위년수를 연장하여 기년을 왜곡하여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왜곡된 기록은 30의 배수를 이용하여 천황의 재위년수를 줄이면 본래의 기년을 찾을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繼體天皇의 재위 25년조에 보이는 주석문도 바로 이러한 기년왜곡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 25사의 기록에 왜5왕이라는 존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일본서기와 정확히 부합하는 왜5왕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그 왜5왕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숨겨놓았는데, 그 것이 바로 이 ‘백제본기’ 타령을 한 주석문인 것이다.
필자는 앞서 일본서기 자체의 기록과 주석문인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이라는 기록이 서로 상충함을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점은 바로 뒤에 있는 문장에서 구할 수 있다. 그 문장을 보자. “由此而。辛亥之歲當卄五年矣。後勘校者知之也。” 후에 勘校者는 그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之’는 지시대명사로 25년이나 28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장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자는 자신들의 기록(或本)을 무시하면서까지 잘못된 ‘백제본기’의 25년을 이용하여 천황의연대기를 작성하였다. 그러다보니 천황의 재위기간에 왜곡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이 확연하다. 일본서기는 그 것을 勘校하면 올바른 연대기가 작성된다는 증표를 숨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일본서기에서 “日本天皇及太子皇子俱崩薨”을 찾아보면 바로 安康천황대에 일어난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 일본서기는 그에 대한 증표로 안강천황부터는 앞서 작성하던 의봉력(인덕력)을 버리고 새롭게 원가력으로 기년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안강의 재위년수를 줄이고 繼體天皇의 재위를 28년으로 늘이면, 송서 본기와 열전에 보이는 왜5왕의 조공기록이 일본서기에 보이는 일본천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 아마 일본서기의 후반부가 원가력으로 작성된 이유는 일본서기를 작성할 때 이용한 원사료들이 원가력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는 1년 전에 작성한 글이다. http://www.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1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00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ver. 0.10.4222
잡담 저는 작은 새를 한 마리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름에서 마지막 글자가 雄인데, 그 곳에 있습니다. 제가 당긴 활시위에 다행히도 그 새가 다치지는 않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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