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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08-08-30 11:36:50, Hit : 2214, Vote :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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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해석문제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해석문제



아래의 원문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일부입니다.

1) 景初中,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其次與邑長。其俗好衣幘,下戶詣郡朝謁,皆假衣幘,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2)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위의 문장은 2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景初中으로 시작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部從事吳林으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두 개의 문장은 10년 정도의 시간의 차이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아래 글 참조 : 倭人전에 기록된 <拘邪韓國>,樂浪邊民을 돌려준 고이왕

2번 째 문장을 보면 ‘吏譯轉有異同’라는 표현이 있는데, ‘통역이 전함에 異同이 있었다.’라고 번역됩니다. 통역이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아 대화의 상대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화를 하는 주체 둘을 먼저 찾아야 문장의 정확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둘이 바로 部從事吳林과 臣智激韓입니다. 둘 사이에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많은 대화가 오갔을 것입니다. 위 문장은 그 대화 내용 중 하나를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리고, 辰韓八國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것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포상8국과 동일한 실체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래의 문장을 볼까요.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주어는 臣智激韓,동사는 攻, 목적어는 帶方郡崎離營입니다. 忿은 없어도 됩니다. 이런 걸 부사라고 하나요?

臣智激韓이 忿(부사) 帶方郡崎離營을 공격(攻)하였다.
해석을 해보면 아주 간단한 문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일한 형식의 문장이 1) 景初中 문장에도 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집단이 대화를 하고 있다가, 급기야 대화는 파경(?)으로 향하고, 하나가 울컥하는 마음에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이 때 太守弓遵과 樂浪太守劉茂가 병사를 일으켜 之(臣智激韓)을 정벌했다. 遵은 戰死하고, 二郡은 드디어 韓(臣智激韓)을 멸망시켰다.

기존의 해석은 遂滅韓한 존재를 마한이라고 해석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문장 전체의 뜻이 엉망이 되어 버렸죠. 그래서, 臣智激韓에 대한 구구한 설들이 난무하였고,....



그리고, 臣智激韓을 인명으로 봐야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http://mnum.mokpo.ac.kr/yoonbo/09_1.asp 에 있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 인용 시작
'臣智激韓忿'은 通行本 魏志에 나오는 것으로 百納本(南宋 紹興本)에는 '臣책沾韓忿'이라고 표기되어 차이를 보이는 데 通志(南宋 紹興 31년)에는 '臣분沽韓忿'으로 기록되어 있어<이하 생략>/////

인명임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의 사본을 만들다 보니, 뜻이 통하지 않는 문장이라 여겨 가장 타당해 보이는 글자를 선택했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판본마다 글자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죠.



만약 그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하나 택하여 어떠한 주장을 할려면, 자신이 선택한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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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서석 (2008-08-30 14:20:18)
물론 livemiri님은 펄쩍 뛰시겠지만.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다수 학자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韓臣智激忿 攻帶方郡岐離營......한의 신지들이 격분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

韓의 위치가 엉뚱한 곳에 놓이는 바람에 수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머리를 싸맨다면 저자(?혹 필사자,필사자가 틀림없을 듯)는 얼마나 미안해 하겠습니까?
서석 (2008-08-30 14:26:36)
三韓傳에서 토착인의 인명이 나온 예가 있습니까? 그리 중요한 대목도 아닌데 인명이 등장해야 할까요?
livemiri (2008-08-30 18:53:22)
서석님이 (2008-08-30 14:20:18)에 쓰신 글

물론 livemiri님은 펄쩍 뛰시겠지만.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다수 학자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韓臣智激忿 攻帶方郡岐離營......한의 신지들이 격분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

韓의 위치가 엉뚱한 곳에 놓이는 바람에 수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머리를 싸맨다면 저자(?혹 필사자,필사자가 틀림없을 듯)는 얼마나 미안해 하겠습니까?



서석님이 (2008-08-30 14:26:36)에 쓰신 글

三韓傳에서 토착인의 인명이 나온 예가 있습니까? 그리 중요한 대목도 아닌데 인명이 등장해야 할까요?




/////////////// livemiri


서석님 曰
물론 livemiri님은 펄쩍 뛰시겠지만.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다수 학자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韓臣智激忿 攻帶方郡岐離營......한의 신지들이 격분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

livemiri 曰
예전 제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경해석을 한다면, 더 이상 토론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발언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다수의 학자가 주장한다고 참이 된다면 얼마나 웃기는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건 코미디이지, 학문이 아닙니다.

臣智激韓의 후손들에 의하여 4~5세기에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이루어지고, 또 6~7세기 신라의 왕권까지도 장악합니다. 삼한일통의 주체가 바로 臣智激韓의 후예라는 것을 이해할 때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은 보이지 않는 여백에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서석님 曰
韓의 위치가 엉뚱한 곳에 놓이는 바람에 수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머리를 싸맨다면 저자(?혹 필사자,필사자가 틀림없을 듯)는 얼마나 미안해 하겠습니까?

livemiri 曰
진수는 위대한 역사가입니다. 꼭 필요한 것만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록을 이해할 사람을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은 范瞱입니다. 范瞱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후 후한서 동이전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서석님 曰
三韓傳에서 토착인의 인명이 나온 예가 있습니까? 그리 중요한 대목도 아닌데 인명이 등장해야 할까요?

livemiri 曰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잘 찾아보시면 두 사람의 인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설이나 수필 같은 글을 읽을 때, 중요한 대목에 사람이름이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을 적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적을 수도 있고 적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수는 臣智激韓 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나도나 (2008-08-30 19:23:58)
연려실기술에는 韓을 빼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네요...

臣智激忿攻...(연려실기술 별집 제19권/ 歷代典故/ 三韓)
livemiri (2008-08-31 01:02:44)
도나도나님이 (2008-08-30 19:23:58)에 쓰신 글

연려실기술에는 韓을 빼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네요...

臣智激忿攻...(연려실기술 별집 제19권/ 歷代典故/ 三韓)



/////////////// livemiri


도나도나님 曰
연려실기술에는 韓을 빼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네요...
臣智激忿攻...(연려실기술 별집 제19권/ 歷代典故/ 三韓)



livemiri 曰
비슷한 시기 海東繹史에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같이 韓자가 그대로 있습니다.
臣智激韓忿,...(海東繹史 제3권 世紀 3 三韓)

이긍익이 연려실기술을 지을 때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韓자를 뺀 것 같아 보입니다.

도나도나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고전번역원 ( http://www.minchu.or.kr/MAN/index.jsp )에 가면 영인본과 번역문을 같이 볼 수가 있습니다.

제 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석 (2008-08-31 19:09:41)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인명이 둘이라..... 좀 찍어 봐 주시죠.
遣支,蹴支,秦支=臣智 不例=樊濊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럼 報,廉을 이름이라 보나요?
앞뒤 문장을 봐서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인명이 등장할려면 그에 걸맞는 사건이 있어야죠.
서석 (2008-08-31 19:21:19)
livemiri님曰
제가 소설이나 수필 같은 글을 읽을 때, 중요한 대목에 사람이름이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을 적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적을 수도 있고 적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수는 臣智激韓 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하셨는데....

삼국지위서동이전 전체에서 인명, 그것도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이름이 어떤 대목에서 등장하는지 살피는게 우선 아닐까요? 그 점을 무시해도 좋은지 의문입니다.
도나도나 (2008-08-31 20:03:54)
激韓을 인명이라 단정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몇개 있는 것 같습니다.
삼국지의 위 문장은 백납본 삼국지는 다르게 기술되어 있고, 두우의 통전도 다른 내용이며, 이를 근거로 윤용구 교수같은 분은 다른 주장을 한 것으로(1999년) 알고 있습니다.
사고전서에서 激xx忿의 용례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것이 보입니다.

1. 御纂周易述義 卷7
小人不可不逺然惡則激怨致忿不嚴則召侮啓羞不惡以畜物嚴以自守乃可全其遯也

2. 欽定四書文 本朝四書文 卷5
激其惡而忿疾者決不相貸各呈其品以自将亦無可趨避之路故見好無黨同之嫌而見惡亦無戾俗之誚士固有遭時得位而賢愚咸稱其美者非皆好之比也

漢典에서 激의 뜻을 찾아보니, 동사중에,
(4) 鼓動人心,使有所感發 [excite]
激而發之。——唐· 柳宗元《柳河東集》
激於義而死。——明· 張溥《五人墓碑記》
激眾憤。——清· 薛福成《觀巴黎油畫記》
의 의미도 보입니다.

즉, 신지가 '韓의 분노를 자극했다(excite)'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이름으로 단정하기에는 더 많은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livemiri (2008-08-31 20:12:18)
서석님이 (2008-08-31 19:09:41)에 쓰신 글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인명이 둘이라..... 좀 찍어 봐 주시죠.
遣支,蹴支,秦支=臣智 不例=樊濊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럼 報,廉을 이름이라 보나요?
앞뒤 문장을 봐서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인명이 등장할려면 그에 걸맞는 사건이 있어야죠.



서석님이 (2008-08-31 19:21:19)에 쓰신 글

livemiri님曰
제가 소설이나 수필 같은 글을 읽을 때, 중요한 대목에 사람이름이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글을 적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적을 수도 있고 적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수는 臣智激韓 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하셨는데....

삼국지위서동이전 전체에서 인명, 그것도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이름이 어떤 대목에서 등장하는지 살피는게 우선 아닐까요? 그 점을 무시해도 좋은지 의문입니다.




/////////////// livemiri


서석님 曰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인명이 둘이라..... 좀 찍어 봐 주시죠.
遣支,蹴支,秦支=臣智 不例=樊濊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럼 報,廉을 이름이라 보나요?
앞뒤 문장을 봐서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인명이 등장할려면 그에 걸맞는 사건이 있어야죠.

livemiri 曰
辰王治月支國 ( 辰王은 月支國을 다스린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신라왕이 辰王입니다. 이 진왕이 마한의 月支國을 다스린다는 기록입니다.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거의 장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삼국지 위지동이전은 예,맥,왜,한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부여, 구려, 한, 왜인전으로 구분 가능합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4개의 소단락으로 구분됩니다. 1~3세기 예,맥,왜,한의 국가 4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부여전은 부여의 역사를, 구려는 고구려의 역사를, 한은 신라와 가야의 역사를, 왜인전은 왜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부여, 고구려, 한, 왜국에 왕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변한에도 왕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왕은 진왕(신라본기의 신라왕)에게 소속된 臣智입니다.

辰王治月支國은 신라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臣智或加優呼 이후는 변한의 신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臣智或加優呼( 신지는 간혹 우대하는 호칭을 더했다.)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臣雲遣支報는 安邪(국명)의 踧支濆(인명) 臣離兒不例는 拘邪(국명)의 秦支廉(인명)의 號이다. /// 臣으로 시작하는 부분이 우대하는 호칭입니다.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魏率善邑君歸義侯는 安邪(국명)의 踧支濆(인명)
中郎將都尉伯長侯는 拘邪(국명)의 秦支廉(인명)의 관직입니다.

위의 두 사람이 辰王(신라본기의 신라왕)의 눈을 피해 明帝가 몰래 보낸 대방, 낙랑 태수를 만난 臣智들입니다.




서석님 曰
삼국지위서동이전 전체에서 인명, 그것도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이름이 어떤 대목에서 등장하는지 살피는게 우선 아닐까요? 그 점을 무시해도 좋은지 의문입니다.

livemiri 曰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글은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주어는 臣智激韓, 동사는 攻, 목적어는 帶方郡崎離營입니다. 忿은 부사라서 없어도 됩니다.
“臣智激韓이 忿히 여겨(부사) 帶方郡崎離營을 공격(攻)하였다.”

주어로써 인명이 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livemiri (2008-08-31 20:15:49)
도나도나님이 (2008-08-31 20:03:54)에 쓰신 글

激韓을 인명이라 단정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몇개 있는 것 같습니다.
삼국지의 위 문장은 백납본 삼국지는 다르게 기술되어 있고, 두우의 통전도 다른 내용이며, 이를 근거로 윤용구 교수같은 분은 다른 주장을 한 것으로(1999년) 알고 있습니다.
사고전서에서 激xx忿의 용례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것이 보입니다.

1. 御纂周易述義 卷7
小人不可不逺然惡則激怨致忿不嚴則召侮啓羞不惡以畜物嚴以自守乃可全其遯也

2. 欽定四書文 本朝四書文 卷5
激其惡而忿疾者決不相貸各呈其品以自将亦無可趨避之路故見好無黨同之嫌而見惡亦無戾俗之誚士固有遭時得位而賢愚咸稱其美者非皆好之比也

漢典에서 激의 뜻을 찾아보니, 동사중에,
(4) 鼓動人心,使有所感發 [excite]
激而發之。——唐· 柳宗元《柳河東集》
激於義而死。——明· 張溥《五人墓碑記》
激眾憤。——清· 薛福成《觀巴黎油畫記》
의 의미도 보입니다.

즉, 신지가 '韓의 분노를 자극했다(excite)'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이름으로 단정하기에는 더 많은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 livemiri

의견 감사드립니다.
livemiri (2008-08-31 20:17:35)
죄송ㅋㅋ 오타 수정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거의 장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거의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라디오 (2008-08-31 22:57:49)
忿은 아쉽게도 명사와 동사 용법밖에 없네요^^.
서석 (2008-08-31 23:39:17)
"신지혹가우호..."로 이어지는 대목은 워낙 논란이 많은 문장이라 그렇게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진왕을 신라왕이라는 주장은 견강부회라는 느낌입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서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인명을 적은 경우는 부여,고구려,왜에 한해서입니다. 나머지는 인명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진왕도 마찬가지.
고구려,부여는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되었고 왜도 중국과의 접촉하는 대상은 여왕국 하나였기에 이름이 필요하고 이름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만 삼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왕이 삼한을 대표해서 중국과 접촉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삼한은 무려 78국의 이름을 적고 있고 그 중 특별한 국가와의 접촉을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석 (2008-08-31 23:53:00)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격한이 인명이라면 문장을 다시 봅시다.
=>신지 격한이 분노해서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토벌했다.==>궁준은 전사했다==>2군은 마침내 韓을 멸했다.

격한이 공격했으면 격한을 잡아다 목을 베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韓을 멸합니다. 따라서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에서 주어는 격한이란 개인이 아니고 韓이란 집단이란 말이지 않습니까?
livemiri (2008-09-01 00:43:36)
라디오님이 (2008-08-31 22:57:49)에 쓰신 글

忿은 아쉽게도 명사와 동사 용법밖에 없네요^^.



/////////////// livemiri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臣智激韓의 분함이 帶方郡崎離營을 공격했다.
臣智激韓이 분히 여겼다. (그가) 帶方郡崎離營을 공격했다.
livemiri (2008-09-01 00:44:15)
서석 (2008-08-31 23:39:17)

"신지혹가우호..."로 이어지는 대목은 워낙 논란이 많은 문장이라 그렇게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진왕을 신라왕이라는 주장은 견강부회라는 느낌입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서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인명을 적은 경우는 부여,고구려,왜에 한해서입니다. 나머지는 인명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진왕도 마찬가지.
고구려,부여는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되었고 왜도 중국과의 접촉하는 대상은 여왕국 하나였기에 이름이 필요하고 이름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만 삼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왕이 삼한을 대표해서 중국과 접촉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삼한은 무려 78국의 이름을 적고 있고 그 중 특별한 국가와의 접촉을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석 (2008-08-31 23:53:00)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격한이 인명이라면 문장을 다시 봅시다.
=>신지 격한이 분노해서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토벌했다.==>궁준은 전사했다==>2군은 마침내 韓을 멸했다.

격한이 공격했으면 격한을 잡아다 목을 베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韓을 멸합니다. 따라서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에서 주어는 격한이란 개인이 아니고 韓이란 집단이란 말이지 않습니까?


/////////////// livemiri


서석님 曰
"신지혹가우호..."로 이어지는 대목은 워낙 논란이 많은 문장이라 그렇게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livemiri 曰
저는 "신지혹가우호..."로 이어지는 대목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 사람을 하나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저 혼자 생각에 ‘이 글(신지혹가우호^ 관련) 쓴 사람은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이해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의 판단이 정확할 것입니다. ㅋㅋ



서석님 曰
진왕을 신라왕이라는 주장은 견강부회라는 느낌입니다.

livemiri 曰
진한 12개국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왕입니다. 그리고, 그 12개국이 신라입니다. 그 12개국이 신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삼국지 위지 한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수 많은 억설[臆說]들이 나오는 거예요.
신라는 포상8국 전쟁 이후 변한 12개국을 접수합니다. 또 한전은 辰王治月支國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왕은 신라의 영역 외에도 변한 전역과 마한의 영역 일부까지도 통치하고 있는 왕입니다.



서석님 曰
삼국지위서동이전에서 중국인이 아닌 夷人의 인명을 적은 경우는 부여,고구려,왜에 한해서입니다. 나머지는 인명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진왕도 마찬가지.
고구려,부여는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되었고 왜도 중국과의 접촉하는 대상은 여왕국 하나였기에 이름이 필요하고 이름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만 삼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왕이 삼한을 대표해서 중국과 접촉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삼한은 무려 78국의 이름을 적고 있고 그 중 특별한 국가와의 접촉을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livemiri 曰
인명에 무엇 때문에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3개의 인명을 보여 드렸습니다.
고구려 부여가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한 것처럼 신라도 강력한 왕국입니다. 지금까지는 신라의 통치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 삼한 78개국 어쩌고 저쩌구... 하는 이상한 이야기들만 쏟아낸 것입니다. 한 때 제가 그 글들을 읽으면서 아까운 시간을 좀 낭비하기도 했습니다.

진한 12개국 영역 안은 관료를 통한 직접지배이며, 포상8국 전쟁 이후 접수한 변한 12개국은 신지를 통한 간접지배 방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지가 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석님 曰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遵戰死,二郡遂滅韓。

격한이 인명이라면 문장을 다시 봅시다.
=>신지 격한이 분노해서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다.==>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토벌했다.==>궁준은 전사했다==>2군은 마침내 韓을 멸했다.

격한이 공격했으면 격한을 잡아다 목을 베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韓을 멸합니다. 따라서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에서 주어는 격한이란 개인이 아니고 韓이란 집단이란 말이지 않습니까?

livemiri 曰
臣智激韓을 잡아다 목을 베었는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臣智激韓을 박살내었습니다. 그 박살 낸 기록이 二郡遂滅韓입니다. 이 때 韓이라고 기록한 것이 바로 臣智激韓의 나라입니다. 저의 앞의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것입니다. 읽지 않으셨다면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臣智激韓과 二郡遂滅韓에서 韓에 대한 부분은 따로 글을 좀 더 적을 예정입니다.


서석님에게 질문드립니다.
서석님 曰 “주어는 격한이란 개인이 아니고 韓이란 집단이란 말이지 않습니까?”
서석님 그럼 멸망한 韓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이지요?
삼국지 한전에 기록된 1.마한, 2.진한, 아니면 3.변한, 아니면 4.삼한 전체 이 중에 없다면 그 韓이 어디에 있는 존재입니까?

저는 앞의 저의 글에서 <拘邪韓國>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절은 이제 여름의 흔적을 조금 남기고, 가을로 떠나가는군요. 올 가을 풍성한 결실이 온 사람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라디오 (2008-09-01 01:34:41)
고구려사초 서천대제기(서천왕)

◎ 二十一年庚戌, 正月, 與<于>后, 入<西川宮><溫湯>.
五月, <羅>大水<月城>頹毁.
<馬韓>七國來附.

○ 21년{AD290}경술, 정월, <우>후와 함께 <서천궁><온탕>에 들었다.
5월, <신라>에서는 홍수가 나서 <월성>이 무너져 내렸다.
<마한>의 일곱 나라가 찾아와서 귀부하였다.

진서 사이전에 277년,280년,281년,290년에 마한이 서진에게 사신을 파견한 기록이 남아 있죠.

237년, <류흔>・<선우사>・<오림> 등이, <대방>・<낙랑> 등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 十三年 壬寅, 秋九月, 行<東明祭>于<卒本>. <張華>遣使来朝, <馬韓>及附於<華>. <芻牟鏡>七十卷新成.

○ 13년{AD282}임인, 추9월, <졸본>에서 <동명제>를 지냈다. <장화>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자, <마한>은 <장화>에게 붙기에 이르렀다. <추모경> 70권을 새로이 꾸몄다.

二郡遂滅韓 에서 韓이 어느나라였든간에...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사실로 봐요.
마한은 277년이후로 백제의 세력이든가..고구려이든가에 의해 급격히 세력이 약해졌다고 봅니다.
270년대는 백제 고이왕시절입니다.
張華가 누구인지는 미스터리이죠. 대방왕일 수도 있고..
라디오 (2008-09-01 06:39:25)
진서(晋書) 장화열전(張華列傳)나온다는 그 명제상.. 張華로군요.
라디오 (2008-09-01 07:26:35)
帝紀 第三 武帝

七年春正月甲寅朔,日有蝕之。乙卯,詔曰:「比年災異屢發,日蝕三朝,地
震山崩。邦之不臧,實在朕躬。公卿大臣各上封事,極言其故,勿有所諱。」夏五
月,郡國十三旱。鮮卑慕容廆寇遼東。秋七月,硃提山崩,犍為地震。八月,東夷
十一國內附。京兆地震。九月戊寅,驃騎將軍、扶風王駿薨。郡國八大水。冬十一
月壬子,以隴西王泰都督關中諸軍事。十二月,遣侍御史巡遭水諸郡。出後宮才人、
妓女以下三百七十人歸於家。始制大臣聽終喪三年。己亥,河陰雨赤雪二頃。是歲,
扶南等二十一國、馬韓等十一國遣使來獻。

太康 7년= 286년. 마한등 11국 견사래헌.
라디오 (2008-09-01 07:41:37)
列傳 第六/張華
乃出華為持節、都督幽州諸軍事、領護烏桓校尉、安北將軍.撫納新舊,戎夏懷之.東夷馬韓、新彌諸國依山帶海,去州四千餘里,歷世未附者二十餘國,並遣使朝獻.於是遠夷賓服,四境無虞,頻歲豐稔,士馬強盛.
서석 (2008-09-01 12:39:21)
제가 아는 livemiri 님은 이렇게 일방적인 선언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상합니다.
기존 통설을 뒤엎는 그런 획기적인 주장을 하시려면 훨씬 많은 근거(가량 고고유물 등)를 제시하셔야 합니다.

韓은 국가가 아닌 종족명으로 봐야 합니다. 중국인의 기록상으론 한반도에 3개의 종족이 나타나니 貊,濊,韓입니다. 삼국지에서 삼한 78국의 이름을 다 적고 國이라 적었지만 어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에 견줄수 있을까요? 수천내지 수백가구 되는 부락일 뿐입니다.

기원 4세기 이전 한반도 남부에 거대한 권력체가 등장했다는 흔적은 지금까지 전혀 나타난바 없습니다. 기록을 중시하신다면서 기록에도 없는 실체의 존재를 역설하시니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라디오 (2008-09-01 12:57:22)
新彌國은 끝까지 남은 韓國중에 하나겠죠.

◎ 十三年 壬寅, 秋九月, 行東明祭于卒本.上芻牟鏡七十卷. 張華遣使来朝, 馬韓反附於華.

○ 13년{AD282}임인, 추9월, <졸본>에서 <동명제>를 지냈다.추모경 70권을 올렸다. <장화>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자, <마한>은 <장화>에게 반부하였다.

위의 해석에 오타가 나 있어.정정했습니다.
Posted by livem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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