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중국정사기록의 표절이다?
livemiri
2011. 2. 14. 23:00
『삼국사기』의 日食기록은 중국정사기록의 표절이다?
1994년 박창범, 라대일은 『한국과학사학회지』에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이라는 한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에서 삼국의 천문기록은 독자적 관측의 결과이며, 또 이 일식기록을 통하여 삼국의 초기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이 논문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일식이 일어났다는 66개를 확인하고 그 가운데 53개가 실현되어 80%가 진짜로 일어난 일식이었으며, 특히 서기 219년까지의 초기기록에서의 실현율은 89%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와 더불어 중국의 일식기록은 63~78%에 불과했고 일본의 초기기록(628~950년)은 35%에 그쳤다는 비교를 통하여 “일식현상에 관한한 「삼국사기」는 동아시아의 모든 고대 사서 중에서 신뢰도가 가장 높음을 알수 있다.(즉 실제 관측에 근거한 자료임)”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실현율’이니 ‘신뢰도’니 하는 주장에 조금 의문이 드는데,.. 아래 필자가 경험한 일이 좋은 參照가 될 것 같아 같이 기록한다.
/////// 아주 예전 아들녀석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이 녀석이 공부를 하기 싫으면, 숙제를 스스로 하지 않고 답지의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지 엄마에게 딱 걸린 경우가 있었다. 하루는 집사람이 숙제 검사를 하는데, 답지에 두 문제 정도 오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데 이 오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들녀석이 오타난 답안을 그대로 적은 것이 아닌가? 자기가 제대로 이해를 하고 답을 적었다면 그 날도 아무 일 없이 넘어 갔을 터인데 그 오타로 말미암아 이제까지의 부정행위가 밝혀진 것이었다. 그래서 지 엄마에게 무척 혼이 난 적이 있었다. ///////
아마 자식을 키우면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판단이 든다.
하여튼,...
다음 글을 유심히 읽어 보자.
///////
<이전 생략>
1. 赫居世二十四年六月壬申晦의 日食
齊蕂國治氏는 그의 力著 『前漢時代의 天文史料』에서 飯島가 대비하여 놓은 「建昭五年六月壬申晦 日有食之 不盡如鉤」의 實在日字에 일식이 없었으므로 말하기를 “記述이 상세하므로 오산의 결과라기 보다도 실측기록의 錯簡이 있을 듯하다”고 평하고 『三國史記』의 것은 『漢書』의 誤記錯簡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 하였다. 玄敎授는 -33 IV 28(乙巳)와 -33 IX 22(乙亥),[筆者按 사실은 壬寅]의 部分食을 가능한 候補일식으로 열거하였다. Oppolzer의 食典 -33(서기 전 34년) 欄에 의하여 이 해 발생한 4개의 부분식을 분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日 字 Julian 日 萬國標準時 干支 陰曆 -33 III 29170909218h 42.9乙巳二月末日 -33 IV 28170912210h 5.8 乙亥四月一日 -33 IX 22170926213h 9.3 壬寅七月末日 -33 X 21170929823h 15.1辛未 八月二十八日
이 가운데에서 우선 -33 III 29日의 부분식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한밤중이 되어서 불가능하다. 東經 120~130˚는 표준시에서 8~9시간을 가산하여야 되는 것이며 중국에서는 부분식 발생시간이 아침 2시 43분이고 따라서 간지도 乙巳에서 丙午로 바뀌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33 IX 22의 부분식이 제거되어야 되며 나머지 2개의 부분식도 「六月」과 「壬申晦」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五行志』는 있지도 않은 일식에 “皆旣食이 아니고 갈고리처럼 남은 부분이 있었다”(不盡如鉤)라고 하였다. -88 IX 29의 일식은 중국을 가로지르는 金環食이었는데 이에 대비되는 일식 기사는 “征和四年八月辛酉晦 日有食之 不盡如鉤”라고 똑같은 표현을 썼다. 따라서 이 『五行志』의 기사는 齊蕂氏가 말하듯 錯簡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하기 때문에 Oppolzer의 食典에서 「壬申晦」에 상당하는 일식을 찾으면 서기전 34년 부근인 서기전 38년에서 곧 발견되는 것이다. 즉 -38 VII 20의 環食은 그 중심대가 보르네오를 지나는 것으로 중국에서 충분히 현저한 일식 현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식은 “永光五年五月壬申晦 日有食之”라고 기입되어야 되는 것인데 『漢書』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필자가 추측하기에는 班固가 『漢書』를 편집할 때 “五年 壬申晦 日有食之 不盡如鉤” 따위 竹簡 메모가 正光 5년에서 建昭 5년 資料檔에 혼입되어 착오가 생기고 金富軾 등이 『三國史記』를 편집할 때 착오를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간주한다.
2. 南解王三年十月丙辰朔의 日食
飯島氏는 이 일식 연월일에 해당하는 중국의 연대를 居攝元年十月丙辰朔이라고만 적어 놓았고 玄교수는 서기 6년 9월 11일의 일식에 比定하여 놓았고 渡邊氏는 무시하여 버렸다. 居攝元年十月丙辰朔은 6 IX 10日이지만 이날에는 일식이 없었고 玄교수가 대비해 놓은 것처럼 다음날 金環食이있었다.[食帶通過中國]. 이 날을 漢式으로 고치면 “居攝元年八月丙辰晦 日有食之”인데 『漢書』 王莽傳에 “居攝元年 冬十月丙辰朔 日有食之”만 있다. 十月丙辰朔에는 일식이 없었고 八月丙辰晦에는 금환식이 잇었지만 『漢書』에 수록되지 않아 당연히 8월이 10월, 晦가 朔으로 변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班固의 편집상 착오 아니면 史官에 의한 轉寫之訛 같은데 『三國史記』는 아무 것도 모르고 『漢書』를 답습한 것이다.
3. 奈解王六年三月丁卯朔의 日食 飯島氏는 建安 6년 10월 癸未朔에 일식이 잇었다는 기사와 대비하고 이 날에 일식이 없었으므로 이것은 다음 행에 있는 “建安十三年十月癸未朔 日有食之”에 영향을 받아 오기된 것이 아닌가 말하고 『三國史記』의 “三月丁卯朔”이 정확하다고 하였으나 奈解王 6년이라는 서기 201년 음력 3월 丁卯朔에는 일식이 없었다. 의 자료원은 『後漢書』 孝獻帝紀의 “建安六年春三月丁卯朔 日有食之”인데 中華書局校訂本에서는 『通鑑目錄』에 의하여 2월로 정정하여 놓았다. 玄교수는 201 III 21(丙寅)의 금환식으로 보았는데 이 때 중국에서는 다음 날 7.40AM이었으므로 정확히는 III 22이고 병인에서 정묘로 바뀌어서 中華書局 교정본의 일식일자와 맞게 되는 것이다. 朱文鑫의 「歷代日食考」는 201년 7월 甲子의 일식이라 하였지만 이것은 잘못이고 『三國史記』의 답습의 착오가 여기서도 증명된다.
<중간 생략>
5. 高句麗太祖六十二年三月의 日食
이 고구려 시일에 대비되는 元初元年 三月癸酉일은 114 V 4일로써 이 날은 3월 12일이 된다. 일식은 음력 月朔이나 月晦에 일어날 수 있지만 한 달의 중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이 날에 일식이 없었으므로 서기 114년에 일어난 일식을 참고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일 자 Julian日 종 류 음 력 114 V 221762838 皆旣食 四月朔辛卯 114 XI 15 1763015 金環食 十月朔戊子
朱文鑫氏는 전자가 “三月癸酉 日有食之”로 변한 것으로 보았고 飯島는 후자가 譌한 것으로 보았다. 玄文에서는 양자 모두 참고로 적었지만 후자의 干支가 오식되었다. 필자는 『後漢書』 五行志에 “安帝永初元年三月二日癸酉 日有食之”라고 기록되었으나 元初元年에는 同月同干支의 일식 기록이 없고 安帝紀의 永初元年과 元初元年에 똑같이 「三月癸酉 日有食之」로 적혀 있으므로 元初元年의 일식 기사는 晉의 司馬彪 등이 일식 자료를 各 帝紀에 배분할 때 잘못하여 永初元年 元初元年 두 곳에 간 것으로 간주한다. 永初元年 三月癸酉日의 일식은 107 IV 11의 것으로 서태평양을 東上하는 金環皆旣食이었다. 『後漢書』의 편집 때 착오가 그대로 『三國史記』에 반영되었으나 간지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였는지 干支는 빼버렸다.
<이하 생략>
/////// 출처 : 方善柱, 「韓․中 古代紀年의 諸問題」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 제2호 1987.1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편년체의 기록에서 日干支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日食이 아닌 천문현상인 경우에서 독자기록으로 파악되는 경우에도 日干支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日食기사에는 꼬박꼬박 日干支가 따라 나온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참고로 위 논문에 각주로 인용된 논문을 하나 더 소개합니다.
玄正晙, 「한국의 古代日食記錄에 관하여」 『東方學志』 22輯, 1976
방대한 일식관련 자료가 있는 곳 http://eclipse.gsfc.nasa.gov/SEatlas/SEatlas.html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을 위 사이트의 자료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음력을 양력으로 변환하여야하는데, 그래서 한국천문학회 『천문학회지』에 실린 논문한 편을 소개합니다. 조금의 오차가 있다고 하네여.
박동현, 陰曆을 陽曆으로 換算하는 簡便한 方法 - 高麗 李朝 天文 硏究 1 - 『천문학회지』, v.1, no.1, 1968. 12
그리고 아쉬운 홈피 하나,.. 음양력 변환계산 http://astro.kasi.re.kr/Life/ConvertSolarLunarForm.aspx?MenuID=115
입력범위가 ‘1391년 2월 5일부터 2050년 12월 31일까지’로 삼국시대 같은 그 이전 시대의 음양력 변환의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좀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