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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日食기록은 중국정사기록의 표절이다? [II]

livemiri 2011. 2. 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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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日食기록은 중국정사기록의 표절이다? [II]
『삼국사기』의 日食기록은 중국정사기록의 표절이다? [II]






역사적 사건이란 공간과 시간이 정해진 곳에서 인간들의 어떠한 행위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하여는 시간정보가 기록되어야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삼국 시기의 동북아에서는 시간의 정보를 나타낼 때 60갑자를 이용하였는데, 예를 들어 “양력날짜 2011년 02월 16일 (수요일)”은 60갑자를 이용하면 “음력간지 辛卯년 庚寅월(1월) 壬寅일(14일)”이다.


실질적으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지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되어 있다.(이 당시 백제인들이 사용한 책력은 원가력이다.)

“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
“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
태세간지+□월+월삭간지+□일+일간지


이처럼 백제인들이 기록한 역사기록에서 분명 월삭간지와 일간지가 쓰이고 있음이 확인되고, 일본서기에 인용되어 있는 백제삼서의 기록에도 三月十二日辛酉, 四月一日庚辰 등이 보이니, 그들이 남긴 역사기록에서도 간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그것은 후대 역사서를 편집되었을 때 그대로 인용되었을 터인데, 현존하는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 월삭간지나 일간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금석문이나 일본서기에 인용된 기록 등으로 미루어 삼국사기의 저본이 되었을 기록에는 월삭간지나 일간지가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日食관련기록에는 간지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앞서 필자는 方善柱의 「韓․中 古代紀年의 諸問題」란 논문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중국정사기록의 잘못된 일식기록이 삼국사기에 그대로 오류를 반복하는 몇 가지 경우를 보여주었다. 나머지 더 자세한 것은 그 논문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논문에는 ‘단군기년에 대한 문제’ ‘新羅佛威紀年에 대한 문제’도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사실 중국 정사기록에서 보이는 일식 기록은 그 당시에 사용하던 책력에 영향을 받는다. 漢나라는 서기전 104년부터 太初曆을 쓰다 서기85년부터는 四分曆을 사용하였다. 그 이후로 乾象曆, 景初曆 등이 쓰여지다 서기445년부터 元嘉曆이 사용되었다. 그러니 중국정사기록에 보이는 日食기록도 그 당시에 사용된 책력에 맞춰져 있기 마련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이 중국정사기록의 干支와 일치한다는 것은 삼국이 중국왕조가 책력을 바꿀 때마다 그 책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간지가 일치하던지, 아니면 후대에 중국정사기록의 일식 기록을 옮겨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日食을 제외한 천문현상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정사기록에 보이지 않는 독자적인 기록이 많이 있다. //위 그림화일을 참조('박라논문에 있는 표1'의 첫 번째), 나머지부분은 박라논문에서 직접 확인하기 바람. 위 표에서 독자기록이라 한 것 중 사실 중국의 정사기록에서 확인되는 것도 있음// 이러한 독자적인 관측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은 천문현상을 독자적으로 관측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마 독자적인 관측을 통한 자료가 충분히 있었을 것임에도 삼국사기의 일식관련 기록은 중국정사의 기록을 일부 옮겨온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연유로써 앞서 소개한 논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원자료(한서 후한서 등)의 잘못된 정보가 삼국사기의 日食기록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 전의 고유한 사료에 있던 일식기록들 중, 중국정사기록과 대조하여 삼국사기의 저자들이 취사선택하나보니 原정보의 오류가 그대로 답습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취사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삼국사기의 기사에 월삭간지나 일간지가 없는 이유를 日食기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중국정사의 日食기록을 옮겨 적음으로써 책력에 따라 윤달을 두는 방법이나 29일과 30일을 배치하는 방법이 다르니 월삭간지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한 연유로 삭제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왜 삼국사기의 저자들은 일식관련 기록을 중국의 정사기록에서 가지고 왔을까?


일본서기는 삼국사기와는 대조적으로 자세한 태세간지, 月朔干支, 일간지를 기록하고 있다. 간지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일본서기가 그 기사에 “엄격한 시간적 제한을 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사가 나타난 사건이 ‘실제 언제 일어난 것인가?’와 상관없이 일본서기가 의도적으로 편집한 시간을 보여주고, 또 그 시간간격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기록된 간지를 이용하고 일본을 건국했다는 신무의 기년을 계산해보면 그는 서기전 660년에 즉위한 것으로 된다. 그러나 필자는 예전 일본서기의 기년을 복원하면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신무원년을 서기91년이라고 주장을 하였다.(예전 필자의 글을 참조 바람)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ver 0.00. 3690. 7. 7












잡담
이제 완전하게 봄기운을 느낄 수가 있네요.
지난 겨울 차디찬 동장군이 한반도를 추위로 꽁꽁 묶어두고 절대 풀어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자연은 이렇게 돌고 돌아 봄이 오는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