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穢貉朝鮮과 一統三韓
livemiri
2011. 3. 15. 19:30
穢貉朝鮮과 一統三韓
여러 역사 연구자들의 글이나 논문을 읽다보면 예맥조선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 예맥조선이라는 것을 고조선이라고 불리는 나라와 동일한 나라인 것처럼 인식하는 태도를 보곤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글들을 읽을 때 마다 황당스럽다 못해 당황스럽다. 사실 穢貉朝鮮이라고 인식된 나라는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 적이 없었는데, 어떤 연구자들의 글 속에는 그런 나라가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기술되어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穢貉朝鮮이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사마천의 史記를 검색해보면 穢貉朝鮮이라는 표현이 더러 보인다. 필자가 대충 찾아보니 匈奴列傳에 두 번, 貨殖列傳에 한 번 보였다. 그 원문은 아래와 같다.
東接穢貉、朝鮮-- 史記 匈奴列傳 漢使楊信於匈奴。是時漢東拔穢貉、朝鮮以為郡-- 史記 匈奴列傳 夫燕亦勃、碣之間一都會也。南通齊、趙,東北邊胡。上穀至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寇,大與趙、代俗相類,而民雕捍少慮,有魚鹽棗栗之饒。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 史記 貨殖列傳
위의 기록을 보면 穢貉과 朝鮮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穢貉朝鮮이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오해를 받을 소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사기 전체에서 조선이라는 표현이 단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수없이 많으니, 위의 기록 또한 연나라의 동쪽에 穢貉과 朝鮮이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만약 穢貉朝鮮이 하나의 실체라면 연의 동쪽에 穢貉朝鮮과 朝鮮이 별도로 2개 존재해야한다. 그런데 貨殖列傳에 기록되어 있는 사마천의 지리인식을 보면 연의 동쪽에는 穢貉, 朝鮮, 真番이 있다고 하였다. 사마천의 史記에는 조선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조선열전은 기자의 후손인 준왕을 축출하고 위만이 왕으로 있던 나라를 조선이라고 하였으며, 이 조선이 漢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한무제가 육군과 수군을 보내 우거왕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한 지역이 바로 穢貉, 朝鮮, 真番지역인 것이다.
이 예맥,조선이라는 표현은 진수의 삼국지에도 나타난다.
1.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南與朝鮮、濊貊,東與沃沮,北與夫餘接。 2.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濱大海而居。其地形東北狹,西南長,可千里,北與挹婁、夫餘,南與濊貊接。 3. 濊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接,東窮大海,今朝鮮之東皆其地也。
위 기록을 보면 濊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今朝鮮之東皆其地’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濊’가 바로 삼국지에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濊貊’이며,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穢貉’으로 현재의 통설에서 ‘동예’라 부르는 지역으로 지금의 원산만유역이다.
한무제가 穢貉(지역)과 그 북쪽의 옥저지역에 임둔군과 현토군을, 朝鮮(지역)에 낙랑군을, 真番(지역)에 진번군을 설치하고 직접지배를 하게 되자, 이 지역에 선주하고 있던 조선유민들이 지금의 경상도지역인 진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때 이주한 유민들이 바로 신라(박씨신라)라는 국가를 건설한다.(기원전57년)
나당연합을 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신라는 당의 야욕을 분쇄하고 대동강유역과 원산만 이남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확정짓는 것을 앞서 언급하였다.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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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입소문을 타고 나에게까지 한편의 영화가 날라오더군요. 그래서 어제 저녁 늦은 시간 아내랑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를 관람하였어요. 늙어 아내를 먼저 보내고 소일거리로 우유배달을 하며 지내는 할아버지가 평생을 이름도 없이, 주민증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살아온 한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내 가슴에 다가오더군요. 아직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께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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