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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비극 I - 부록 3. 野人과 濊

livemiri 2011. 3. 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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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11-03-22 16:06:38, Hit : 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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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비극 I - 부록 3. 野人과 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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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의 기록을 보면 野人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이 野人은 바로 조선의 북방에 거주하던 종족으로 女眞을 말한다. 조선초기에는 이 野人을 회유와 무력의 양면정책을 통하여 제어하였다. 조선이 설치한 4군6진도 바로 이 野人(여진)을 정벌하여 그들을 땅을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17세기 초 추장 누루하치[奴兒哈赤]를 중심으로 ‘後金’을 세우고 1627년에는 정묘호란, 1636년에는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탈하였다. 삼전도의 굴욕이 바로 이를 말한다. 그 뒤 조선은 청나라(後金의 太宗은 황제의 위에 오르고 大淸으로 국명을 바꿈)에 조공하며 군신관계를 맺게 되었다. 지금 만주족이라 일컫는 종족이 바로 이들이다.


고려시대를 살펴보자.
발해가 멸망한 뒤 그 故土에 거주하던 女眞은 새롭게 건국된 고려의 북진정책으로 인해 교섭하게 되는데, 고려 초기에는 여진이 고려를 上國으로 섬겼고, 고려는 이들을 회유하여 평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완옌부[完顔部]의 추장 盈歌가 여진족을 통합한 후 고려와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 12세기 초 고려는 윤관을 보내 여진족을 토벌하고 9성을 쌓았지만, 1년 만에 돌려주게 된다. 그 뒤 아구다[阿骨打]가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1115년 국호를 ‘金’이라 칭한 후, 1117년 고려에 형제관계를 요구하여 왔고, 1125년 遼를 멸망시킨 뒤에는 고려에 事大의 예를 강요하였다.



이처럼 고려와 조선의 북방에 있던 女眞, 야인으로 불리던 종족들은 한반도에 살던 韓人과는 차별적인 존재이며, 늘 화친과 전쟁을 반복하며 지내온 것이다. 급기야 조선은 그들의 후손에 의하여 건국된 청나라의 신하국으로 전략했다.



그렇다면 여진(야인)들의 거주지역은 어디인가? 이 문제의 답은 다들 알고 있다. 발해가 나라를 이루고 있던 땅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지역이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으로 조금 차이가 생겨나고 새로운 세력가가 나타나 주변의 종족들을 통합하고, 또 부근의 강한 다른 종족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졌을지언정 그들은 발해를 구성하던 종족들의 후손임에는 틀림없다. 혹시 ufo를 타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그 지역의 종족들의 씨를 말리고 터를 잡아 후손을 퍼트리지 않은 한 예전부터 그 지역에서 쭉 살고 있었던 토착인들의 후예로 파악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발해 또한 고구려를 구성하던 종족을 기본으로 한다. 고구려는 貉족이 지배종족으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동부지역의 濊족에 대하여 이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자료를 앞서 보였다.


지금의 통설은 발해가 고구려유민을 바탕으로 지배종족을 형성하고 말갈족을 피지배종족으로 성립된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의 지배층을 형성했을 많은 사람들이 당에 전쟁포로로 끌려갔다. 그 후 고구려의 후예들에 의한 부흥운동이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貉족의 지역적 기반에 의한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조영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동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가 성립하는데, 발해 건국의 중심지가 되는 한반도의 동북부지역은 예전부터 濊족의 지역적 기반이다.


신구당서의 기록을 보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靺鞨로 표현하고 있다.

구당서 渤海靺鞨大祚榮者本高麗別種也
신당서 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도 靺鞨에 대한 많은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에 예속되어 있던 濊족을 靺鞨로 불렀는데, 그들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기록이 나타난다. 그 말갈족이 발해를 건국한 것이다. 이들은 韓人과 구별되는 종족이다.




濊人(예인), 女眞(여진), 野人(야인)이라는 소리값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ver. 0.1010.191988



















//////////////////////////////////// 참고

말갈족[靺鞨族]



주(周)나라 때에는 숙신(肅愼), 한(漢)나라 때에는 읍루(挹婁)라 불렀다. 본래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물길(勿吉)이 지배하였으나 6세기 중엽 물길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들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이라 부른다. 이들 부족 중 대표적인 것은 예맥(濊貊) 계통으로 농업을 주로 하던 속말(粟末), 백산(白山)과 순수 퉁구스계로 수렵에 의존하던 백돌(伯咄·불녈(拂涅)·호실(號室) ·흑수(黑水) ·안차골(安車骨) 등 7개 부족이었다.

그 중에 속말과 백산부족은 고구려에 복속하였다가 고구려가 멸망하자 영주(營州:遼寧省朝陽)로 이주하였고, 후에 발해가 성립되자 대부분의 말갈족이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흑수부족만은 쑹화강과 헤이룽강[黑龍江] 하류 지역에 근거를 두고 발해에 대항하였고 발해 멸망 이후 흑수말갈은 거란에 복속되어 여진(女眞)이라 불렀으며, 그후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으로 나뉘었다가 생여진은 금(金)나라를 건국시킨 주체가 되었다.

[출처] 말갈족[靺鞨族]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