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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각석의 원명과 추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I

livemiri 2012. 7. 9.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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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12-07-09 03:43:44, Hit : 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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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각석의 원명과 추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I
울주 천전리각석의 원명과 추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I







이 글은 울주 천전리각석의 원명과 추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하여 앞서 작성하였던 필자의 글을 보충하기 위해 작성하는 글이다.

원명
乙巳▨(525년,법흥왕12년)沙喙部葛文王覓遊來始淂見谷▨之古谷无名谷善石淂造書Z以下爲名書石谷字作之 幷遊友妹麗德光妙於史鄒女郎三之
食多煞作功人尒利夫智奈▨悉淂斯智大舍帝智 作食人榮知智壹吉干支妻居知尸奚夫人眞宍智沙干支妻阿兮牟弘夫人 作書人慕尒智大舍帝智


위 원명의 기록에서 많은 연구자들 사이의 큰 쟁점 중 하나는 ‘幷遊友妹麗德光妙於史鄒女郎三之’에서 보이는 인적구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원명의 기록에는 乙巳▨(525년,법흥왕12년)에 書石谷을 찾아 놀러온 사람을 셋(三之)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자에 따라 ‘友妹, 麗德光妙, 於史鄒女郎’ 등으로 구분을 하여 나름대로의 조합을 만들어 세 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바로 옆에 기록되어 있는 추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추명의 서두는 원명의 乙巳▨(525년,법흥왕12년) 기록이 다시 기록되어 있다.


추명
過去乙巳年(525년,법흥왕12년)六月十八日昧沙喙部徙夫知葛文王妹於史鄒女郎三共遊來 以後▨年八巳年過去 妹王考妹王過人
丁巳年(537년, 법흥왕24년)王過去其王妃只沒尸兮妃愛自思
己未年(539년, 법흥왕26년)七月三日興王与妹共見書石叱見來谷 此時共三來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徙夫知王子郎深▨夫知共來
此時▨作功臣喙部知礼夫知沙干支▨泊六知居伐干支 礼臣丁乙尒知奈麻 作食人眞宍知氵彼珎干支婦阿兮牟呼夫人尒夫知居伐干支婦一利等次夫人居礼次▨干支婦沙爻功夫人分共作之


추명의 기록을 보면 ‘過去乙巳年(525년,법흥왕12년)六月十八日昧沙喙部徙夫知葛文王妹於史鄒女郎三共遊來’라고 되어 있어 원명의 乙巳年(525년,법흥왕12년) 기록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니 ‘三共遊來’한 사람도 분명 동일하다. 그래서 두 기록의 인물들을 대응시켜보자.

원명 - 沙喙部葛文王,추명 - 沙喙部徙夫知葛文王
원명 - 友妹,추명 - 妹
원명 - 於史鄒女郎,추명 - 於史鄒女郎

이렇게 대응을 시키고 보니 원명에 기록되어 있는 ‘麗德光妙’가 대응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두 기록에서 葛文王과 於史鄒女郎이 정확히 대응을 하니 ‘麗德光妙’는 友妹의 이름이거나 於史鄒女郎을 꾸미는 수식어가 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원명의 기록은 아주 단순하다. 乙巳年(525년,법흥왕12년) 6월 18일 새벽(昧)에 沙喙部徙夫知葛文王이 友妹와 於史鄒女郎의 손을 맞잡고 지금의 울주 천전리 계곡에 놀러 왔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놀러온 곳이니 계곡의 이름이 없었고 새롭게 書石谷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그리고 그 때 沙喙部徙夫知葛文王을 수행한 食多煞作功人, 作食人, 作書人도 같이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곳에 己未年(539년, 법흥왕26년) 7월 3일 대낮(興)에 신라의 왕실에서 또 다시 셋이 찾아온다. 추명을 보면 ‘此時共三來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徙夫知王子郎深▨夫知共來(이 때 함께 셋이 왔는데, 另卽知太王妃 夫乞支妃와徙夫知王子郎 深▨夫知가 함께 왔다.)’라고 되어 있다. 이 문장 또한 인명이 나열되어 있고 ‘共三來’라는 표현으로 인해 인명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연구자 사이에 이설이 많은 부분이다. 그래서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徙夫知王子郎深▨夫知의 구분과 이 때 같이 온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己未年’ 전체 문장이 제대로 이해되어야한다.

己未年(539년, 법흥왕26년)七月三日興王与妹共見書石叱見來谷 此時共三來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徙夫知王子郎深▨夫知共來

먼저 ‘王与妹共見書石叱見來谷’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쓰인 ‘叱’의 용도가 파악되어야한다. 사실 이 ‘질’자는 ‘꾸짖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인데 문장의 중간에 끼어듦으로써 번역을 어색하게 만든다. 그래서 필자는 ‘叱’을 목적격조사로 파악한다.

livemiri주 // ‘叱’의 용도를 필자 보다 먼저 목적격조사로 파악한 연구가 있다.
[蔚州 川前里 書石銘에 나타난 眞興王의 王位繼承과 立宗葛文王] 朴南守 [한국사연구] 제141호 2008.6 //


위 문장은 임신서기석의 어순과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어 우리말 어순으로 자연스럽게 번역되는데,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주어가 파악되어야한다. 우리말은 보통 주어가 첫머리에 온다. 그래서 주어가 될 수 있는 후보는 ‘1).王’ 또는 ‘2.王与妹’이다.

1). 王이 妹와 더불어 함께 보았던 書石을 보러 來谷하였다.
2). 王与妹(王과妹)가 함께 보았던 書石을 보러 來谷하였다.

1)번 문장은 來谷한 주체가 王이 되어 己未年의 기록은 王, 그리고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 徙夫知王子郎深▨夫知 이렇게 3명이 서석곡을 찾은 것이 된다. 그리고, 2)번 문장은 來谷한 주체가 王과 妹가 되어 己未年에 서석곡을 찾은 사람이 4명이 되어 ‘此時共三來’와 모순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1)번의 번역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1)번 문장처럼 왕을 주어로 보았을 때 王이 妹와 더불어 함께 書石을 보러온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천전리 각석의 원명이나 추명에는 妹와 더불어 함께 書石을 보러온 사람은 沙喙部徙夫知葛文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2)번의 문장에서 함께 書石을 본 王与妹를 乙巳年의 沙喙部徙夫知葛文王과 妹로 파악한다면,....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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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달력을 보니 내일이 마눌님의 생일이네여.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나네여. 이번에는 조그마한 이벤트라도 준비할까 하는데,... 뭐! 좋은 것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