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임금'이라는 왕호의 기원에 대하여

livemiri 2023. 5. 19. 14:33

麻立干에 대한 저의 글은 신라와 고구려 금석문에는 (), 일본서기에는 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로 기록되어 있는 글자의 소리값이 (임 또는 잉)이라고 파악한 글입니다. 이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단지 소릿값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寐錦, 𥧌錦 麻袖[=立干]는 모두 잉금또는 임금으로 읽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 동천왕 21(서기 247) 春二月 기사에는 고려인들이 인식한 임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원문을 보면,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이다.)

或云

[平壤者本仙人]王之都王險()([平壤은 본래 仙人]의 도읍인 王險이다.)

 

입니다.

 

이 기사에서 仙人王儉(선인왕검)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 王儉壬儉(임검, 임금)’이 변형된 형태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이는 왕검조선(王儉朝鮮)임금조선의 변형이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참고하라는 의미로 앞의 제 글 각주 에서 고려인들의 임금에 대한 인식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그 글의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livemiri.tistory.com/296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376263555BD9BFC0D 2. 단군조선에 대한 이해.pdf

 

저는 지금 우리가 의 호칭을 임금이라고 부르는 기원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壬儉(임검, 임금), 신라의 寐錦(임금)을 거쳐 위만조선의 王險城에 기원한다고 파악합니다. 즉 대동강 유역에서 생활하던 조선유민이 한반도 남단의 진한으로 망명하여 서라벌을 건국하면서 이 王險[壬儉]을 왕호로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王險[壬儉]에 살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권력자,.. 그의 호칭이 바로 의 이름에서 기원한 임금이라는 것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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