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라는 왕호의 기원에 대하여
麻立干에 대한 저의 글은 신라와 고구려 금석문에는 寐(매), 일본서기에는 𥧌(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麻(마)로 기록되어 있는 글자의 소리값이 痳(임 또는 잉)이라고 파악한 글입니다. 痳이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단지 소릿값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寐錦, 𥧌錦 麻袖[=立干]는 모두 ‘잉금’ 또는 ‘임금’으로 읽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 동천왕 21년(서기 247년) 春二月 기사에는 고려인들이 인식한 ‘임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원문을 보면,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平壤은 본래 仙人 王儉의 宅이다.)
或云
[平壤者本仙人]王之都王險(也)([平壤은 본래 仙人]王의 도읍인 王險이다.)
입니다.
이 기사에서 仙人王儉(선인왕검)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 ‘王儉’은 ‘壬儉(임검, 임금)’이 변형된 형태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이는 왕검조선(王儉朝鮮)은 ‘임금조선’의 변형이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참고하라는 의미로 앞의 제 글 각주 에서 ‘고려인들의 ‘임금’에 대한 인식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그 글의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livemiri.tistory.com/296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376263555BD9BFC0D 2. 단군조선에 대한 이해.pdf
저는 지금 우리가 王의 호칭을 ’임금‘이라고 부르는 기원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壬儉(임검, 임금), 신라의 寐錦(임금)을 거쳐 위만조선의 王險城에 기원한다고 파악합니다. 즉 대동강 유역에서 생활하던 조선유민이 한반도 남단의 진한으로 망명하여 서라벌을 건국하면서 이 王險[壬儉]을 왕호로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王險[壬儉]城에 살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권력자,.. 그의 호칭이 바로 城의 이름에서 기원한 ’임금‘이라는 것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