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중성리비 문단 구분과 내용파악

livemiri 2009. 10. 9. 14:40
글쓴이
livemiri(2009-10-09 14:35:11, Hit : 0, Vote : 0)
제목
중성리비 문단 구분과 내용파악
이글은 제가 한국고대사학회( http://www.koreaancienthistory.net/ )에 게시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중성리비 문단 구분과 내용파악

livemiri (역사21 http://www.history21.org/ )

비문을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이 든다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볼 때 마다 다른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글에서 밝힌 생각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월 7~8일 있었던 토론회 통하여 많은 분들의 다양한 사고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충실하게 임하며 다양한 정보를 피력해 주신 토론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래에 적는 글들은 저만의 사고는 아니고, 토론을 하셨던 많은 분들의 사고를 제가 조합해본 내용입니다. 제가 쓴 글의 주장과 그 때 토론에 임하신 분들의 주장과 겹치는 부분들이 있을 터이고, 또 저보다 먼저 ‘~~한 주장’을 하신 분들도 있을 터인데, 그러한 점을 일일이 주석으로 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제 보다 먼저 저와 동일한 주장을 한 내용은 그 분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밝힙니다.




중성리비를 통하여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를 유추하여 보았습니다.

1. 신라 중앙 정부에서 牟旦伐에서 일어난 어떤 탈취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2.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심의가 이루어졌다. (이 때 심의를 한 사람이 비문에는 ‘喙 部習智阿干支 沙喙 斯德智阿干支’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심의 결과를 실무자에게 전달한다. (이 때 실무자를 비문에는 ‘沙喙 尒抽智奈麻 喙 部夲智奈麻’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실무자는 牟旦伐에 使人을 파견한다. (이 때 使人은 奈蘇毒只와 果西牟利로 파악됩니다.)
5. 현지에 파견된 使人은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道使와 함께 신라 중앙 정부에서 심의 판결한 내용을 공포한다.
6. 그 내용을 비문으로 기록한다.(이 비가 바로 중성리비이다.)




이러한 추론을 통하여 비문은 7단락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단락 : 亲巳□□□中折盧□... 喙 部習智阿干支 沙喙 斯德智阿干支 敎 沙喙 尒抽智奈麻 喙 部夲智奈麻
신사년 □월中 折盧... 喙부의 部習智阿干支 沙喙부의 斯德智阿干支가 沙喙부의 尒抽智奈麻 喙부의 部夲智奈麻에게 敎한다.


2단락 : 夲牟子 喙 沙利 夷斯利
夲牟子가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심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파악합니다. 沙利夷斯利가 한 사람(沙利夷斯利)인지, 두 사람(沙利와 夷斯利)인지, 인명+관등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단락 : 白爭人 喙 評公斯弥 沙喙 夷須 牟旦伐 喙 斯利壹伐 皮末智 夲波 喙柴干支 弗乃壹伐 金評□干支 祭智壹伐
말로 논쟁한 사람(白爭人)은 喙 評公斯弥 沙喙 夷須 牟旦伐 喙 斯利壹伐 皮末智 夲波 喙柴干支 弗乃壹伐 金評□干支 祭智壹伐이다.

위의 夲牟子와 같이 白爭人도 심의 과정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람들의 총칭으로 파악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원고, 피고, 변호인단을 아우러는 단어로 이해합니다.

저는 2문단과 3문단을 주어 서술어 목적어를 가지고 있는 문단으로 이해하지 않고,
“夲牟子 + 인명의 나열”,“白爭人 + 인명의 나열”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牟旦伐 喙 斯利壹伐 皮末智’가 기록되어 있는데,牟旦伐은 지명으로 파악하며, ‘牟旦伐 喙 斯利壹伐 皮末智’의 의미를 牟旦伐과 관련이 있는(예를 들어, 그 곳에 살고 있던지, 그 곳을 소유하고 있는지, 등등....) 喙부의 斯利壹伐 皮末智로 파악합니다.



4단락 : 使人 奈蘇毒只 道使 喙 念牟智 沙喙 鄒須智 世令干居伐壹斯利 蘇豆古利村 仇鄒列支干支 沸竹休壹金知 那音支村 卜岳干支 走斤壹金知
㉠ 使人인 奈蘇毒只는 道使 喙 念牟智 沙喙 鄒須智 世(재임 중)에 干居伐壹斯利 蘇豆古利村 仇鄒列支干支 沸竹休壹金知 那音支村 卜岳干支 走斤壹金知에게 명령한다(令).
또는,
㉡ 使人인 奈蘇毒只와 道使인 喙 念牟智 沙喙 鄒須智는 세간에 干居伐壹斯利 蘇豆古利村 仇鄒列支干支 沸竹休壹金知 那音支村 卜岳干支 走斤壹金知에게 명령한다(令).

㉠이 더 깔끔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干居伐, 蘇豆古利村, 那音支村은 지명으로 파악합니다. 蘇豆古利村은 蘇豆(인명)+古利村(지명)으로 볼 수도 있지만, 古利가 골짜기를 뜻하는 ‘골’로 파악되어 蘇豆古利(蘇豆골)村 전체를 지명으로 파악합니다.
使人 奈蘇毒只는 6단락에 보이는 使人 果西牟利와 같이 이번 사건으로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관리이고, 道使 喙 念牟智 沙喙 鄒須智는 以前부터 이 지역에 있던 중앙정부의 관리로 이해합니다.
중앙에서 파견되었지만, 奈蘇毒只나 아래 6단락의 果西牟利는 部名이나 관등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을 토대로 이 使人들은 1단락에 실무자로 기록되어 있는 沙喙 尒抽智奈麻 喙 部夲智奈麻의 휘하에 딸려있는 6부소속이 아닌 하급관리이거나, 개인 비서(?? 표현이 이상하지만) 정도의 직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봉평비를 보더라도 곤장을 맞는 사람들은 使人으로 되어 있습니다.


5단락 : 珍伐壹昔云豆智沙干支宮曰夫智宮奪尒今更還牟旦伐喙作民沙干支
이 비문의 핵심 내용이라고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牟旦伐喙作民沙干支’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이 것을 牟旦伐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喙(부명)+作民(인명)+沙干支(관등명)으로 파악합니다.
‘作民이 이름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한자식이라던가, 또 作民 뒷부분에 智가 붙어있지 않은 것 등을 통하여 인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측 문헌에 보이는 金春秋가 일본측 문헌인 일본서기에는 春秋智로 기록된 용례가 있습니다. ‘한자식이름(春秋)+智’가 쓰였다는 결정적 증거이며, 또 春秋와 春秋智는 동일인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비문에 기록된 作民沙干支도 作民이 한자식 이름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作民=作民智’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5단락의 문장을 보면 ‘..還牟旦伐喙作民沙干支’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牟旦伐喙作民沙干支는 한 명의 인명으로 파악되며 이것은 還의 목적어입니다.
그래서, “牟旦伐喙作民沙干支에게 돌려준다(還).”로 번역됩니다.

혹자는 문장을
㉠‘..還牟旦 // 伐喙作民沙干支’
㉡‘..還牟旦伐喙 // 作民沙干支’
㉢‘..還牟旦伐喙作民 // 沙干支’
등의 방법으로 문단을 구분하지만, 이 점은 뒤에 이어지는 6단락의 문장이 ‘使人 果西牟利’로 시작되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입니다. ‘使人 果西牟利’는 ‘喙 部習智阿干支 沙喙 斯德智阿干支’의 敎를 받은 ‘沙喙 尒抽智奈麻 喙 部夲智奈麻’가 파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6단락 : 使人 果西牟利 白口 若後世更噵人者与重罪
使人인 果西牟利는 입으로 말하길(白口) 만약(若) 후세(後世) 다시(更) 말하는(噵 사람(人)은(者) 중죄를(重罪) 준다(与.


7단락 : 典書 与牟豆故記沙喙心刀里□
典書人 与牟豆가 이런 연고로 기록한다(故記).沙喙 心刀里,......




이상이 제가 새롭게 중성리비의 내용을 번역하고 파악한 내용입니다.
이 글을 통하여 다시 한번 토론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느끼게 해주신 여러 토론자 및 연구자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저 같은 아마추어 연구자들도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중성리비같은 경우 고화질의 사진자료, 탁본자료 등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하여 모두 자료를 같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지난 토론회에서 몇가지 논의에 질문을 할려고 하였는데 마이크 소리에 모든 토론자분들의 이목에 저에게 집중되는 순간 저의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 이후 제가 말을 하면서 많이 횡설수설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저의 E-메일 주소는 livemiri@paran.co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