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위지 왜인전에 등장하는 3명의 대방태수
livemiri
2009. 11. 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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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 왜인전에 등장하는 3명의 대방태수 위지 왜인전에는 3명의 대방태수가 등장합니다. 景初二年(서기 238년) 에 등장하는 太守劉夏 正始元年(서기 240년)의 太守弓遵 그리고 정시八年,太守王頎이 있습니다. 정시 8년(서기 247년)의 기록은 “其八年,太守王頎到官(태수 王頎이 官에 도착했다)”으로 부임하는 모습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조금만 더 살펴보죠. 한전을 잠깐 볼까요. 다음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 에서 가져온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전]의 일부이다. ///////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其俗好衣幘, 下戶[註020]詣郡朝謁, 皆假衣幘, 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校勘 130] [註021]忿, 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 二郡遂滅韓. [校勘 130]「宋本」에는 ‘臣幘沾韓’으로, 『三國志』「韓傳」에는 ‘臣濆沽國’으로 되어 있으니 ‘幘’과 ‘濆’ 중 어느 하나가 誤記인 듯 하다. /////// 위에 파란색으로 보이는 部從事吳林으로 시작하는 뒷부분의 기록은 앞의 景初中과 시기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部從事吳林은 유주에서 파견된 사람입니다. 외교적인 큰 문제가 생겨 본진에서 응원군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시작되고 太守弓遵은 전사합니다. 그래서 태수관직을 가지고 王頎이 대방군에 새롭게 파견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