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서석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livemiri
2010. 3. 1. 19:14
글쓴이 | livemiri | (2008-09-01 13:39:56, Hit : 1390, Vote : 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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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석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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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붙일려다 새롭게 작성했습니다.
서석님이 (2008-09-01 12:39:21)에 쓰신 글
제가 아는 livemiri 님은 이렇게 일방적인 선언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상합니다. 기존 통설을 뒤엎는 그런 획기적인 주장을 하시려면 훨씬 많은 근거(가량 고고유물 등)를 제시하셔야 합니다.
韓은 국가가 아닌 종족명으로 봐야 합니다. 중국인의 기록상으론 한반도에 3개의 종족이 나타나니 貊,濊,韓입니다. 삼국지에서 삼한 78국의 이름을 다 적고 國이라 적었지만 어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에 견줄수 있을까요? 수천내지 수백가구 되는 부락일 뿐입니다.
기원 4세기 이전 한반도 남부에 거대한 권력체가 등장했다는 흔적은 지금까지 전혀 나타난바 없습니다. 기록을 중시하신다면서 기록에도 없는 실체의 존재를 역설하시니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 livemiri
서석님 曰 제가 아는 livemiri 님은 이렇게 일방적인 선언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상합니다.
livemiri 曰 저는 절대 일방적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저의 주장을 했을 따름입니다.
서석님 曰 기존 통설을 뒤엎는 그런 획기적인 주장을 하시려면 훨씬 많은 근거(가량 고고유물 등)를 제시하셔야 합니다.
livemiri 曰 문헌 사학보다 고고학을 우선에 두시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땅 속에 있는 유물을 파내어 과거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이라는 아주 간단한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그에 못지 않으며,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문헌 기록에는 사람의 사고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고학에서도 유물 속에 명문이 발견되면 흥분하지 않습니까?
서석님 曰 韓은 국가가 아닌 종족명으로 봐야 합니다. 중국인의 기록상으론 한반도에 3개의 종족이 나타나니 貊,濊,韓입니다. 삼국지에서 삼한 78국의 이름을 다 적고 國이라 적었지만 어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에 견줄수 있을까요? 수천내지 수백가구 되는 부락일 뿐입니다.
livemiri 曰 貊,濊,韓,倭는 분명 중국인이 붙여준(? 기록해 놓은) 종족명이 맞습니다. 맥족이 고구려를 건국하여 濊족의 일부를 지배합니다. 낙랑군지역과 그 濊의 땅 일부를 중국은 자신의 고유영역이라 인식하고 군대를 보내 실력으로 그 땅에 대한 지배를 하는 것입니다. 濊족은 부여를 건국하였고, 나머지 일부는 고구려와 중국세력에 돌아가면서 지배를 당합니다. 그 기록이 위지 동이전의 옥저전, 예전의 기록입니다.
그 나머지는 한의 영역(일부 백제 제외)입니다. 3세기 한의 영역을 신라가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문장을 볼까요.
始有六國,稍分爲十二國,弁辰亦十二國,又有諸小別邑,各有渠帥,大者名臣智,其次有險側,次有樊濊,次有殺奚,次有邑借。有1.已柢國、<중간 생략,.. 國名 많음> 24.弁辰瀆盧國。斯盧國、優由國 弁辰韓合二十四國。大國四五千家,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明其爲流移之人,故爲馬韓所制。] <중간 생략> 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衣服絜清,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峻。
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明其爲流移之人,故爲馬韓所制。] 부분은 제가 밑에 저의 주장을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변진한24국은 其十二國屬辰王과 十二國亦有王으로 나누어집니다. 포상8국전투 후에 변한 12개국(十二國亦有王)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됩니다. 安邪(국명)의 踧支濆(인명), 拘邪(국명)의 秦支廉(인명), 臣智激韓 등이 이 변한12개국의 신지입니다. 신라는 이 신지를 통하여 변한을 다스린다는 이야기를 위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위명제는 포상8국전쟁의 두 주체세력인 安邪, 拘邪의 신지를 꼬여내어, 신라를 경계하기 위하여 태수를 몰래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위, 安邪, 拘邪, 왜국의 비미호 사이에 서로 만족할 만한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왜의 비미호에게는 親魏倭王을 내려줍니다. 그리고 拘邪에게는 拘邪韓國이라는 칭호를 내려 줍니다. 비미호가 떠난 변한 12개국의 지배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죠. 아마 신라왕이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拘邪韓國에서 韓의 의미가 어떻게 하여 변한12개국의 지배권이냐?
그 답은 濊전에 있습니다.
예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 이전 생략 三國志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 正始六年(서기 245),樂浪太守劉茂、帶方太守弓遵以領東濊屬句麗,興師伐之,不耐侯等舉邑降。其八年(서기 247년),詣闕朝貢,詔更拜不耐濊王。[正始 6년에 樂浪太守 劉茂와 帶方太守 弓遵은 領東의 濊가 구려에 복속하자,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였는데, 不耐侯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였다. 그 8년에 조정에 와서 조공하므로, 조서를 내려 다시 不耐濊王으로 삼았다.] 이하 생략
///// 이 다음은 한전으로 이어집니다.//
魏가 領東의 濊를 정벌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不耐濊王으로 삼는 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할 부분이 바로 不耐濊王이라는 표현입니다.
위가 정벌한 濊 땅 일부를 不耐侯를 不耐濊王으로 삼아 지배를 하는 것이죠. 후왕을 두어 지배하는 간접지배방식입니다. 신라가 변한12개국을 지배하는 방식과 상통합니다.
///////// 拘邪韓國의 臣智激韓은 魏의 힘을 빌어 쓰러진 변한12개국을 신라로부터 독립시킬려고 하다가 魏의 배신으로 울컥한 마음에 전쟁을 한 것 같습니다.
서석님 曰 기원 4세기 이전 한반도 남부에 거대한 권력체가 등장했다는 흔적은 지금까지 전혀 나타난바 없습니다.
livemiri 曰 ㅋㅋ
서석님 曰 기록을 중시하신다면서 기록에도 없는 실체의 존재를 역설하시니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livemiri 曰 제 글들을 자세히 읽지 않으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기록된 것을 근거로 저의 주장을 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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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자료를 잘 해석하면 새로운 역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네티즌들을 더러 봐 왔는데 livemiri님도 그런 식의 주장을 하시니 실망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찾는 일은 그리 간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만 더 livemiri님이 주장하신 내용이 기록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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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님이 (2008-09-01 17:21:11)에 쓰신 글
기존 자료를 잘 해석하면 새로운 역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네티즌들을 더러 봐 왔는데 livemiri님도 그런 식의 주장을 하시니 실망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찾는 일은 그리 간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만 더 livemiri님이 주장하신 내용이 기록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 livemiri
서석님 曰 기존 자료를 잘 해석하면 새로운 역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네티즌들을 더러 봐 왔는데 livemiri님도 그런 식의 주장을 하시니 실망입니다.
livemiri 曰 ‘기존 자료를 잘 해석하면 새로운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식의 주장이 왜 실망의 대상입니까? 기존의 통설과 다르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인지??
통설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 불신과 변경해석입니다. 기년체의 기록을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앞으로 뒤로 막 옮겨댑니다. 더러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번역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건 학문을 하는 태도가 아니지요.
잠깐 서석님의 글을 볼까요. ////인용 辰王治月支國 臣智或加優呼 臣雲遣支報 安邪踧支濆 臣離兒不例 拘邪秦支廉 之號 其官有 魏率善邑君歸義侯 中郎將都尉伯長侯
인명이 둘이라..... 좀 찍어 봐 주시죠. 遣支,蹴支,秦支=臣智 不例=樊濊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럼 報,廉을 이름이라 보나요? 앞뒤 문장을 봐서 인명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인명이 등장할려면 그에 걸맞는 사건이 있어야죠. /////인용 끝
위 문장의 의미를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문법에 맞는 해석을 시도 하였고, 그 것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유추한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문법에 맞는 해석에 충실하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辰王治月支國,..이하의 문장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 논문들이 많았는데, 저는 읽어볼 가치도 못 느꼈습니다.
상대의 주장이 자신의 주장과 다르면,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토론을 하면 됩니다. 저는 저에게 하는 질문에 제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 실망을 하고, 하지 않고는 서석님의 마음이니 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근디, 저에게 기대가 커셨던 모양이지요?
서석님 曰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찾는 일은 그리 간단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livemiri 曰 동의합니다.
서석님 曰 하나만 더 livemiri님이 주장하신 내용이 기록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livemiri 曰 기록화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연구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죠. 그리고, 진수가 삼국지를 지을 즈음에는 위략을 필두로 동이(예,맥,왜,한)에 대한 많은 기록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삼국지에 간략하게 기록하여도 그 당시 사람들은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다 보니, 많은 책들이 산실[散失]되고, 그 당시의 역사를 삼국지 위지 동이전으로 이해할려고 하니 많이 힘이 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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