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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계체기에 보이는 한반도 남부의 상황 #1

livemiri 2010. 8. 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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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miri(2010-08-06 00:13:00, Hit : 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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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계체기에 보이는 한반도 남부의 상황 #1
일본서기 계체기에 보이는 한반도 남부의 상황 #1




繼體天皇 2년(508) 12월 南海中의 耽羅人이 처음으로 百濟國과 통교

해설 : 이곳에 보이는 耽羅는 제주도를 말한다.



繼體天皇 3년(509년) 2월 倭國에서 백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任那日本縣邑에 있는 백제의 백성들 가운데, 도망 와서 貫에 누락된 채 3~4대 지난 자들을 찾아내어 모두 백제로 돌려보내 호적에 올림
繼體天皇 6년(512년)4월 倭國에서 穗積臣押山을 사신으로 하여 백제에 파견
繼體天皇 6년(512년)12월 백제가 倭國에 사신을 파견하여 임나국의 上哆唎, 下哆唎, 娑陀, 牟婁 4縣을 요구하여 얻어냄

해설 : 계체3년에 任那日本縣邑에 있던 백제인의 원적까지 조사하여 백제로 돌려보냈다는 것은 濟倭間에 任那日本縣邑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추측하는 ‘모종의 합의’라는 것은 ‘任那 日本縣邑’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풍기는 바와 같이 “영토는 왜국이 소유하고, 그 백성 중 백제출신으로 임나에 눌러붙어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은 원적을 조사하여 백제로 보낸 것”으로 파악되어진다.

계체6년 12월 기록의 본문을 보면 穗積臣押山에게 ‘哆唎國守’라는 감투가 씌워져 있다. 이것(哆唎國守)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해 보면, 倭國에서 임나4현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할려는 의도가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4월 백제에 파견되었다가 그는 倭國으로 돌아가지 않고 임나4현의 관리자로써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백제는 왜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여 임나4현을 소유하게 된다.

임나국의 영토(4현)가 백제와 왜국의 외교적 합의를 통하여 백제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임나국에게 ‘현대적 의미의 주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 國守制는 701년 大寶律令이후 실시된 지방 지배 제도로서 國守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이다. 직책은 지방의 행정, 사법, 치안 등 국정일반의 총책임자였다. 계체6년에 보이는 國守는 穗積臣押山의 역할이 701년 大寶律令이후의 國守制와 거의 같았기 때문에 이것을 소급하여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繼體7년(513) 6월 백제가 姐彌文貴장군과 州利卽爾장군을 파견해서 穗積臣押山에게 딸려 보내어 五經博士 段楊爾를 파견하고, 伴跛國에게 빼앗긴 己汶을 외교적으로 반환받을려고 함
繼體7년(513) 8월 백제 태자 淳陀가 죽음
繼體7년(513) 11월 왜국과 百濟의 姐彌文貴장군, 斯羅의 汶得至, 安羅의 辛已奚와 賁巴委佐, 伴跛의 旣殿奚와 竹汶至 등이 외교적 합의를 통하여 己汶과 帶沙를 백제의 영토로 인정.

해설 : 왜국과 외교적 관계를 통하여 임나4현을 획득한 백제가 이번에는 伴跛國에게 빼앗긴 己汶을 반환받기 위하여 외교적인 활동을 시작함. 그러나 8월 태자 淳陀가 죽음으로써 잠시 주춤하다, 11월에 왜국, 斯羅, 安羅, 伴跛와의 외교적 합의로 己汶을 돌려받고 帶沙까지도 차지한다. 伴跛의 이면공작이 있었지만, 백제는 섬진강하구의 중요한 요충지들을 전쟁이 아닌 외교적 방법을 통하여 확실하게 장악함



繼體8년(514) 3월. 伴跛國이 子呑, 帶沙에 성을 쌓아 滿奚에 연결하고, 烽候와 邸閣을 만들어 日本에 대비하였다. 또한 爾列比, 麻須比에 성을 쌓아 麻且奚, 推封과 연결하고, 병사와 무기를 모아 신라를 협박

해설 : 외교에 실패한 伴跛國이 유비무환을 실행. 帶沙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제와 伴跛國 사이에는 완전한 외교적 합의가 이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영토 아닌가? 어느 나라가 그 영토를 내어주고 싶겠는가?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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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몇 년 전 아이피가 노출되는 게시판에서 멀티닉을 돌리던 토론자가 있었어요. 그 토론자는 아이피주소가 뭔지도 모르는 ㅈ고딩이었는지, 같은 아이피주소가 뜨는데도 두 개 이상의 멀티닉을 이용하여 서로를(?) 옹호하는 쉴드를 쳐주면서 글을 적어 다양한 自我를 보여주었는데, 글의 내용에 따라 보는 내가 다 부끄럽더라구요. 혼자 생각에 ‘저렇게 다중인격으로 살고 싶은지?’,.. 그 당시 나야 뭐 토론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으니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막상 토론에 임하는 당사자들은 황당해 했었어요. 그 후로 그 멀티닉 사용자는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고,...


멀티닉을 쓴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때 이후로 나의 생각에는 익명성을 가면으로 삼아 뒤에서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멀티닉을 이용하여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