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우리 상고사
양쪽 손목에 새긴 龍文身 그리고, 가야사
livemiri
2010. 8. 19. 14:50
양쪽 손목에 새긴 龍文身 그리고, 가야사
얼마 전 친구와 술을 한잔할 기회가 있었어요. 늦은 저녁을 먹고 사방이 확 트인 술집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옆 테이블이 왁자지껄한 것이에요. 한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친구와 나의 시선은 옆테이블로 향했죠. 자세히 들어보니, “야!! 너희들 낮에 날 만나면 날 ‘용두’라고 불러라. 그리고 퇴근 후에 날 만나면 ‘사미’라고 불러라. 나는 낮과 밤에 각각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어쩌고 저쩌고,...”
무슨 사연이 있어 이름을 세탁하여 밤낮 동안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여튼, 그는 두 손을 들고 이 것 저 것을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나의 눈에 비친 것은 그 사람의 소매 끝에 보이는 문신이었어요.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손목에는 龍의 머리와 같은 문신이 보였고 다른 손에는 뱀인지 龍인지 하여튼 꼬리로 보이는 문신이 있었어요.
우리는 다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셨죠. 그런데 나의 머릿속을 잠깐 스쳐간 것이 하나 있었어요. ‘저 사람의 몸전체가 용문신이나 뱀문신으로 덮여있는 것인지? 아니면 양쪽 손목 끝에 일부분만 문신을 하였는지?’ 그가 상의를 벗는 행동을 했다면 나의 의문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상의를 벗지 않았어요.
잡담이 길었네요. 필자는 일반 독자들이 일본서기 속에서 伽倻관련 기록을 읽을 때 위의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해요.
더러 일부의 사람들은 ‘가야가 적게는 대여섯 개에서 많게는 열 몇 개가 근 500여년 동안 한반도 남부에 존속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러한 사고가 바로 교과서에서 배운 통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필자가 조사해니 가야는 몇 번 興亡을 하는 신라, 백제, 고구려와 비슷한 영역국가였어요. 그 지역이 바로 경상도 남부지역이죠.
가야의 시작은 伊珍阿豉王(內督朱智)입니다. 그가 가야를 처음 개국하는데 그는 수로왕에게 왕위를 찬탈 당합니다. 사실 伊珍阿豉王(內督朱智)은 신라김씨들의 시조입니다. 신라금석문에 보이는 성한왕이라는 존재이죠. 그래서 가락국기는 수로왕을 시조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서기 43년에 왕위에 올랐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서기 91년 왕위에 올라 19년을 재위합니다. 그리고 수로왕을 이어 2대 綏靖, 3대 安寧, 4대 懿德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懿德 말기에 ‘포상8국전쟁’이라고 이름붙인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의 결과 伽倻는 신라에게 망하게 됩니다. 이제 伽倻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지죠.(참고로 일본서기에서 삭제되어 있는 2대 綏靖, 3대 安寧,4대 懿德의 행적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5대에서 8대까지 ‘孝’자로 시작하는 천황들은 형식적인 가야의 왕이죠. 그런데 이 伽倻가 다시 신라로부터 독립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바로 9대 개화, 10대 숭신천황 즈음입니다.
앞서 제가 용문신 이야기를 하였는데, 일본천황가의 시작을 용문신과 비교하면 이 10대 숭신에서 14대 중애와 신공섭정까지의 기록이 바로 伽倻가 신라로부터 새롭게 독립하는 과정으로 용머리 부분입니다. 일본서기는 그 과정을 자세하게 담아놓은 것입니다. 가야지역의 여러 유력자들이 이합집산을 하면서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는데, 이 때 신공기에 보이는 ‘貴國’으로 표현되는 나라가 새롭게 ‘수로왕의 伽倻영역’을 통합하여 신라, 백제와 경합하는 하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깐, 그 나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반도 경상도 남부지역을 버리고 일본열도로 망명을 하게됩니다. 이게 바로 필자가 주장하는 일본천황가의 기원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자들에 의하여 이전과는 다른 나라가 만들어 지는데 그 것이 바로 가락국기에 보이는 거등왕의 나라입니다.
일본서기를 잃다보면 胎中천황이라는 표현을 가끔 보게 됩니다. 이 胎中천황이 바로 응신을 가리킵니다. 필자는 일본열도에서 시작된 응신의 망명왕조에 선행되는 의미로 한반도 남부에서의 활동을 胎中천황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많은 연구자들은 응신의 선행계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중애, 신공과 응신의 관계를 어떻게 하든지 분리시켜 사고를 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일본서기의 기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의 남정이후 가야는 일본으로 도망간 응신과 한반도 남부에 남아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거등왕으로 분리가 됩니다. 참고로, 가락국기는 수로왕 이하의 왕력을 삭제하고 그의 뒤를 거등왕으로 연결해 놓았어요. 그리고 왕들의 재위기간을 30의 배수를 이용하여 늘여놓았죠.
남제서나 송서에 왜5왕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열도에 있던 왜국의 왕들이 한반도 남부땅을 자국의 영토로인정해달라는 것을 중국정부에 수시로 요구합니다. 응신 이후 왜왕들은 그 땅을 당연히 자국의 영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거등왕이래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중국왕조는 왜국왕의 요구를 형식적으로 들어주던가 아니면 무시해 버립니다. 남제서를 보면 479년 가라국 하지왕이 남제로부터 '보국장군본국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왕조가 왜국왕의 요구를 아예 무시하고 가라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왜국왕의 요구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됩니다.
북한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북한땅이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변국들에게 아무리 강변해봐야 북한땅이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겠어요. 남제서, 송서 기록에서 왜국왕이 요구하는 것은 이것과 거의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거등왕의 가야’가 신라에 병합될 위기에 처했어요. 이 때 백제와 왜국은 신라에 가야가 다시 병합되는 것을 군사적 외교적인 여러 방법으로 저지하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이 일본서기 계체기, 흠명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필자가 말한 뱀꼬리(또는 용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그러나 가야는 결국 신라가 차지해 버립니다.
이 용머리와 뱀꼬리(또는 용꼬리)에 해당하는 기록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 가야는 아주 오랫동안 10개정도의 小國이 버글버글 거렸다는 사고는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ver 0.000.00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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