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글에 대한 제 답변글은 붉은 색으로 적겠습니다.
>다시 잠간 정리하고 얘기하지요. > >1. 숭신 65년조에 任那人 蘇那曷叱智 내조. >2. 수인 2년 시세조 소나갈질지가 '귀국을 원', '아마 선황대에 와서 미귀환인 것 같다', '任那王에게 비단을 주었다', 신라인 비단 탈취. >3. 수인 2년 시세조 주에서 '숭신대에 액유각인(각록 이름 유래) 각록 도착, 意富加羅國의 王子 도노아阿羅斯等(=于斯岐阿利叱智干岐), 이때 천황 붕, 3년간 수인 섬김, 수인이 아라사등에게 "그대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선황을 보고 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황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바꾸어라", 비단 주고 본국으로 귀환시킴, 미마나노구니[彌摩那國]라 함은 이런 연유다. 신라인 비단탈취. > >3의 주는 2를 좀 상세히 얘기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려고 쓴 것이지요. 즉 任那人 蘇那曷叱智=意富加羅王子 阿羅斯等(=于斯岐阿利叱智干岐) ===> 任那人=意富加羅王子(=干岐), 蘇那(소나라의 이두표기)=于斯岐(우시[牛]기>牛城=소나라의 이두), 曷(=加羅의 준말)=阿羅=阿利(아라가야의 준말), 任那=意富加羅(=大加羅라는 뜻임), 시지[叱智]=시도[斯等]>히또[人]로 봄. 쯔누가[都怒我]는 角鹿을 개척한 사람이 이 인물임을 알려주려고 붙인 접두어로 봅니다. > >또 蘇那와 우시기[牛城]은 그 밑에 나오는 이설의 黃牛로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 >문제는, 2. 수인 2년조에 선황대에 와서 미귀환, 3. 주에서 도착하자 이미 천황 붕, 그래서 수인을 3년 섬긴 후 귀환하려고 하는데 이때 미마나라고 불러라 했는데 사실은 한자로 任那, 大加羅(=意富加羅)이던 나라를 이름을 미마나라고 고쳐 불러라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말은 任那라는 한자로 된 국명의 발음을 '미마나'로 고쳐 부르겠다고 하는 것으로 봅니다. 임나라는 나라는 이미 전부터 있었는데 임나의 원래발음이 뭔지는 이런 기사를 보고서는 알 수 없지요. 말을 바꾸면 "원래 나라이름이 任那가 아니었는데 '彌摩那(이두표기)'라는 발음과 任那라는 한자이름을 이때 동시에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란 겁니다. 만약에 한자도 이때 만들었다면 숭신조나 수인 2년조의 임나란 말은 소급적용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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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加羅=意富加羅라는 것이 왜 동일한지 좀 더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일본서기에는 意富는 일본어의 美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마 문장성분으로加羅國을 문법적으로 꾸민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 고어에서의 침사가 무었인지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원문을 다시 보면 [改汝本國名追負御間城天皇御名便爲汝國名] "너의 本國名을 고쳐 追負御間城天皇御名.... 너의 國名으로 하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任那國, 意富加羅國에서 彌摩那國으로 최소한 발음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 까요.두가지를 모두 미마나로 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그런데 님의 글은 "任那라는 한자로 된 국명의 발음을 '미마나'로 고쳐 부르겠다고 하는 것으로 봅니다." "彌摩那(이두표기)"라고 하셨는데, 彌摩那가 이두식 표기라면 어떻게 읽어야 되지요. 아랫 글은 다음에 답변드리겠습니다. 혹 답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국문법의 복잡한 변화를 잘 몰라서입니다. 죄송합니다.
> > >다시 잠간 정리하고 얘기하지요. > >1. 숭신 65년조에 任那人 蘇那曷叱智 내조. >2. 수인 2년 시세조 소나갈질지가 '귀국을 원', '아마 선황대에 와서 미귀환인 것 같다', '任那王에게 비단을 주었다', 신라인 비단 탈취. >3. 수인 2년 시세조 주에서 '숭신대에 액유각인(각록 이름 유래) 각록 도착, 意富加羅國의 王子 도노아阿羅斯等(=于斯岐阿利叱智干岐), 이때 천황 붕, 3년간 수인 섬김, 수인이 아라사등에게 "그대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선황을 보고 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황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바꾸어라", 비단 주고 본국으로 귀환시킴, 미마나노구니[彌摩那國]라 함은 이런 연유다. 신라인 비단탈취. > >3의 주는 2를 좀 상세히 얘기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려주려고 쓴 것이지요. 즉 任那人 蘇那曷叱智=意富加羅王子 阿羅斯等(=于斯岐阿利叱智干岐) ===> 任那人=意富加羅王子(=干岐), 蘇那(소나라의 이두표기)=于斯岐(우시[牛]기>牛城=소나라의 이두), 曷(=加羅의 준말)=阿羅=阿利(아라가야의 준말), 任那=意富加羅(=大加羅라는 뜻임), 시지[叱智]=시도[斯等]>히또[人]로 봄. 쯔누가[都怒我]는 角鹿을 개척한 사람이 이 인물임을 알려주려고 붙인 접두어로 봅니다. > >또 蘇那와 우시기[牛城]은 그 밑에 나오는 이설의 黃牛로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 >문제는, 2. 수인 2년조에 선황대에 와서 미귀환, 3. 주에서 도착하자 이미 천황 붕, 그래서 수인을 3년 섬긴 후 귀환하려고 하는데 이때 미마나라고 불러라 했는데 사실은 한자로 任那, 大加羅(=意富加羅)이던 나라를 이름을 미마나라고 고쳐 불러라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말은 任那라는 한자로 된 국명의 발음을 '미마나'로 고쳐 부르겠다고 하는 것으로 봅니다. 임나라는 나라는 이미 전부터 있었는데 임나의 원래발음이 뭔지는 이런 기사를 보고서는 알 수 없지요. 말을 바꾸면 "원래 나라이름이 任那가 아니었는데 '彌摩那(이두표기)'라는 발음과 任那라는 한자이름을 이때 동시에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란 겁니다. 만약에 한자도 이때 만들었다면 숭신조나 수인 2년조의 임나란 말은 소급적용이겠지만. > >그래서 임나의 발음을 연구해 보았지요. 며칠 전에 이 토론방에 올린 임나에 관한 글에 실려있습니다만. 임나를 분해를 해보면 ( '마까[任]스' + 那 )가 되지요. 那는 國, 羅의 뜻이고 발음은 그냥 '나'입니다. 앞부분을 보면 일어에서 복합어가 조어될 때 어간에서 앞음절이나 뒷음절이 흔히 하나 탈락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반도어와 비교하면 받침이 없어 음절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단축되는 현상으로 이해합니다. > >그래서 '임'의 발음은 어간 '마까'에서 '마'가 탈락하고 가[任]가 되어 ( 가[任]+나[那] ) = '가나[任那]'라고 고대사산책이 최초로 밝히고 있는 겁니다. > >그러면 이 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를 생각해보니 임나가 대가라라고 했고 이것은 김해에 있던 금관가야이므로 이것과 연결지어 생각한 결과 열도어로 가나[金]라는 발음에 착안한 것이지요. 따라서 가나가라[任那加羅]는 최초에는 가나가라[金加羅]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하는 겁니다. 金의 발음은 사국시대에 (ㄱ+아래아+ㄴ) 정도로 추정합니다. 이유는 일어에서 金의 발음이 '가나', '가네', '곤' 등으로 발음되기 때문입니다. > >즉 사국시대에는 가나[任那]=가나[金]라고 같이 놓고 쓴 것으로 봅니다. 5세기 호태왕비문에도 나오므로. 이걸 보니 金官加羅라는 이름 자체가 이상하지요? 그래서 官은 고려인이 하나 더 붙인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금관이란 지명은 서기에 임나 관련 기사에 두어 번 나옵니다. 그러나 금관이란 한자에서 '가나'라는 발음이 나올 수가 없으므로 官은 후세에 첨가한 글자라고 봅니다. 이 金이란 말은 제철과의 연관성이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 >그런데 서기에는 위와 같이 고쳐 부르도록 하라는 등 하는 것은 원래발음 '가나'를 숨기기 위해 적당히 발음을 하나 지어냈다고 봅니다. > >그러니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임나인이 아라가야인[阿羅斯等]으로도 나오므로 임나가라=금(관)가라=대가라=아라가야로 전부 동체란 얘기가 됩니다. 이들 나라들이 각각 별개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서기에는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이름을 여러 개 섞어 쓰고 있는 것이지요. 혼란스럽게 하려는 그들(=서기찬자들)의 의도가 지금도 통하고 있는 셈이지요. 천일창의 나라 新羅도 아라가야의 고명[사기 지리지 함안군조 阿尸良]이었고 이들이 4세기 중반 구주와 열도를 개척할 때 새로 개척한 소국들에 新羅라는 이름을 썼던 겁니다. 그것이 고사기 응신기에 실려있는 천일창의 황우설화에 나오는 신라인데 이 신라는 4세기 중반에 가야가 개척한 구주 서남단의 신라입니다. 따라서 천일창은 경주신라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로 판단됩니다. 아라사등의 아들이니까요. (이 구주신라의 위치를 비정하여 어제 간단히 올렸다가 내려버렸는데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올리지요) > ><일본서기/암파문고/2000년/권2/21p/주6.7>에 보면 ['미마나'라는 이름은 '미마끼(이리비꼬)'라는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 이 설화는 원인과 결과가 逆으로서 미마나라는 이름으로부터 천황의 이름(미마끼이리비꼬)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성씨록 未定雜姓 右京의 三間名公의 조에는 彌麻奈로 적고 있다] > >===> 이건 수인기 주의 내용과는 역의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고 > 미마나라는 지명과 천황의 어떤 인연으로 천황의 화풍시호에 미마끼[御間城]란 말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 ><일본서기/암파문고/2000년/권1/417p/보주5-7>에 > >[임나를 미마나(彌摩那, 彌麻奈, 三間名, 御間名)로 읽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原名은 단정할 수 없으나 任那라는 漢字가 한국인이 붙인, 어떤 지명을 나타내기 위해 充當된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렇다면 미마나는 原名의 '일본사투리'로서 원명에 비교적 가까운 것일 지도 모른다. 수인 2년조의 分注에 의하면 어간성천황시에 처음으로 조공했으므로 천황의 어명(어간성입언명)을 따서 '미마나국'으로 했다고 되어있지만 사실은 오히려 逆일 지도 모른다] > >==> 임나라는 한자 지명은 원래 한국인이 붙인 어떤 지명인데(반도인지 열도인지 알 수 없다는 투로 이해되기도 함) 원명(발음이라는 뜻으로 이해됨)은 알 수 없으나 '미마나'라는 발음은 그 원명에 대한 '열도사투리' 정도로 본다는 얘기네요. > "수인 2년조의 분주에 의하면.....역일지도 모른다" <== 이 내용은 위의 권2의 주와 같은 내용이군요. > >일인들의 의견은 그냥 상식선이네요. > >그런데 신무=숭신=응신=천일창이므로 숭신이 가라출신임을 알려주는 키워드로 쓰였다고 봅니다. 화풍시호 속에 넣어 출신을 알려주고 있는 거지요. 다시 분석해 보면 > >'御間城'에서 御는 존칭이니 떼고 間城을 반도어로 생각해보면 '사이/새 間'입니다. 城은 羅, 那, 國과 대치해 쓸 수 있지요. 예를 들면 金城=新羅이니까요. 여기서 '사이/새 間'의 훈 '새'의 발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뜻을 살짝 바꾸면 한자가 달라집니다. 즉 '새 新'이지요. 그래서 '間>新'으로 '城>羅'로 치환을 하면 新羅가 나와 위에서 얘기한 사기 지리지 함안군조의 아라가야의 고명 아시라[阿尸良]를 漢譯한 新羅와 같아진다는 말입니다. > >다시 '미마나'란 발음이 나오게 된 과정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최초에 아라가야의 고명 아시라[阿尸良]를 漢譯한 新羅를 놓고, 이 新羅를 '새 나라'로 반도어 훈으로 바꾸고 여기서 新의 훈인 '새'를 이용하여 반도어 같은 발음의 훈을 가지는 間으로 글자를 치환한 것이고 羅는 같은 뜻의 城으로 바꾸면 間城이 나오지요. 여기다 존칭을 뜻하는 御를 붙여 일단 숭신의 화풍시호를 御間城으로 만든 겁니다. > > 그러면 열도발음으로 미마기[御間城]가 되지요. 여기서 다시 존칭 御가 붙은 상태의 단어를 통째로 바꾼 겁니다. 즉 城을 같은 뜻의 那로 치환한 것이지요. 그러면 발음이 미마나[御間那]가 됩니다. 이 이후 御間那에서 발음은 같으면서 한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칭들을 혼용하고 있지요. 그것들이 彌摩那, 彌麻奈, 三間名, 御間名, 美麻那란 겁니다. >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서기찬자들이 숨긴 것은 '가나[任那]'라는 발음과 미마나의 최초 원형 '미마나[御間那]'라는 한자이름을 숨겼다고 봅니다. 이 '가나'라는 발음과 御間那라는 단어가 은폐됨으로써 임나가라=금가라(=금관가라)라는 관계의 연결고리가 증발해버린 셈이지요. 그래서 여태 이렇게 풀리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또 숭신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가라왕족인데 그 출신을 표시하려고 붙인 화풍시호가 新羅>間城으로 치환하여 존칭 御를 붙여 조어한 겁니다. 자신들이 임의로 조어한 미마나[御間那]라는 발음을 임나라는 단어에 덮어씌운 거지요. > >그런데 왜 이런 언어의 유희를 구사했을까? 하는 것은 백제가 망한 후에 열도 지배층의 두 축인 백제왕족, 가야왕족들이 겉으로는 반도와의 혈연, 지연 등을 끊고 열도에서 만세일계로 내려온 것처럼 사서를 지은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실사는 빙빙 돌려서 숨기고 여러 가지 인명이나 국명의 이칭들을 지어서 실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봅니다. 말을 바꾸면 그들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봅니다. 표면은 열도의 만세일계, 이면은 가야·백제의 실사라는 식이지요. > >그러다 보니 백제와 가야가 열도를 두고 다툰 실사를 그대로 쓸 수 없어서 가라의 여러 이칭들을 적당히 여러 개로 분리하여 기술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신라라는 이칭을 많이 썼는데 바로 이 이름이 경주신라와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백제가 망한 후에 열도에서 새출발을 하면서 경주신라에 대한 악감정을 가라의 이칭 신라에 얹어서 표현하여 기술하게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경주신라로 오인하기 좋게 되어 있지요. 이 신라가 경주신라가 아니라는 것은 아라사등이 월국을 개척했다 해서 이름에 쯔누가[都怒我]란 접두어가 붙을 정도인데 열도의 북쪽 해안지방에는 신사가 거의 대부분 신라계 신사로 알려져 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니 이 신라가 곧 가야라는 겁니다. > >
* 집주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7-26 08:45) |